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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서재
  • 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 15,300원 (10%850)
  • 2016-02-11
  • : 10,502


리베카 솔닛. 오래전부터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의 에세이를 처음 만났다. 작년 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오래 걸렸다. 핑계를 대자면,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고 훨씬 더 큰 이유는 게으름이 주는 편안함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분발하고 싶다.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도 좋았고 책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이 에세이는 2013년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저명한 작가들은 어떻게 읽고 쓰며 고독을 이겨내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많은 위안을 얻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 책의 추천평을 ‘에세이 모음집, 회고록, 명상의 세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진 책’이라고 말했고, ‘뉴요커’는 솔닛을 ‘서정적인 산문의 대가’라고 평했다.

 



우선 목차의 소제목 구성이 시선을 끌었다. 살구-거울-얼음-비행-숨-감다-매듭-풀다-숨-비행-얼음-거울-살구 순으로 이어지는 글은 마치 돌고 도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솔닛의 언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말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이 문장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한 단락을 인용해 보려 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p13)

 



왜 리베카 솔닛은 이 말로 글을 시작했을까. 솔닛은 이어서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지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는 또 『천일야화』 속 셰에라자드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매일 밤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다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살구’라는 제목은 어머니 이야기이며 마지막 글도 어머니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어머니 이야기는 다른 글에도 자주 등장한다.

 



흔히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있다. 솔닛과 어머니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딸의 눈썹이 둥글고 머리칼이 금발인 것을 시기했던 어머니,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으로 대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백설공주를 향한 왕비의 치명적인 시기심을 이야기한다. 무언가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존재, 외모가 어머니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왕비가 백설공주를 시기한 이면에는 남성이 있고 그들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얘기다. 흔한 동화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고 마는 핵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의 문제와 견주어 해석하는 통찰력으로 번뜩인다. 그렇게 불편한 관계로 지내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고 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수가 줄어들고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 과정을 함께 견뎌야 하는 가족들의 힘든 일상은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 일인지도 모른다. 별일 없는 소박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솔닛의 에세이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알게 되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장소에 가고 모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버마의 양곤에서 승려들이 독재에 맞서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데 그것을 지원하는 집회를 조직하여 참여했던 일화도 있다. 반야심경 구절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동양 문화에도 깊은 관심과 조예가 있는 것에 놀랐다. 정말로 이 작가는 지식인이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느 여름에 받은 살구 더미는 결국 어머니의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라는 권유처럼 느껴졌고 어머니 이야기를 에세이에 녹여낼 수 있었단다.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안고 주고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행복하기만 한 삶도 없고 불행하기만 한 삶도 없다. 적절히 섞여서 견디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삶이 아닐까.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중 한 명이라는 리베카 솔닛도 읽고 쓰며 삶의 모험을 하며 고독을 견디고 살아내고 있구나 싶어서 큰 위안과 희망이 생겼다. 책과 도서관을 예찬하는 부분도 좋았다. ‘모두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곳’이 도서관의 모습이라고 했다.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책이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이어야 한다고.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라고. 그동안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책을 읽어왔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다음엔 리베카 솔닛의 어떤 이야기를 들어볼까.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p100)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 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 준다. 그것은 그날 늦은 밤까지 해변에서 우리가 했던 일처럼 우리 뒤로 바늘땀 같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다.'(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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