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는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으로 처음 만났고 이 소설집이 두 번째다. 그러니까 김애란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는 얘기다. 먼저 소감을 말하자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에 감탄했다. 장편에 비하면 단편은 몰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주변의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깊은 관심과 연민이 없었다면 이런 얘기를 쓸 수 있을까. 이 소설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돈’과 ‘이웃’이다. 행복한 삶의 선택권을 줄 수도 있는 ‘돈’이라는 화두는 우리 삶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그려놓지 않는가. 그리고 ‘이웃’이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중 인상에 남았던 단편 몇 가지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숲속 작은 집>은 한 부부가 미루었던 신혼여행을 떠나 해외의 장소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렀던 경험과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다. 언제부턴가 꿈과 로망으로 여기는 한 달 살기는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있는 거라서 반가운 마음으로 몰입하며 읽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마주치는 낯선 곳은 설렘과 더불어 긴장감도 생긴다. 그 때문에 머무는 공간의 사소한 변화까지도 예민하게 다가온다. 외출했다 돌아온 은주는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알아채고 ‘불길한 생각’이 든다. 숲속 작은집에서 무슨 사건이 터지는 건가 두근두근하며 읽어나가다 안도를 했다. 은주의 ‘불길한 생각’은 다행히 큰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숙소를 청소해주는 메이드와의 소통의 부재였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진다. 객실 청소를 불성실하게 하는 것이 ‘팁’을 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메이드에게는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었다. 감정의 혼란이다. 이런 혼란은 이미 가족 내에서도 있었다. ‘나’와 남편과 ‘나’와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불편한 마음이 뾰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 것을 솔직히 말을 못 한 채 엄마에게 돈을 부치고 고마워하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여기서 <홈파티>의 등장인물 중 배우 이연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고 성찰했던 얘기가 오버 랩 되었다.
<좋은 이웃>은 이사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서명을 부탁하는 이웃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도 여러 번 겪은 일이어서,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 다 소설이 되는구나 싶어서 공감한 이야기였다. 화자의 또래로 보이는 한 부부가 좋은 이웃이 되겠다며 서명을 받아갔는데 말과 다르게 행동한다. 이 소설 속 또 하나의 이웃은 독서 지도를 하는 시우라는 아이다. 어려운 형편인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수강료도 올리지 않고 정성을 다해 독서 지도를 했는데 새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해한다. 어려운 제자를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고 뿌듯했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남편의 말에 허탈해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 부분의 마음속 독백은 애잔함 그 자체였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 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p141)
살다 보면 품고 있던 큰 꿈과 희망은 얼마나 작아지는지.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다. 모두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면서도 내가 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감추고 살지 않을까. 모두 그런 마음이 아닐까. 역시 화자인 ‘나’도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자기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린 것, 분명 좋은 일이고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p130)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도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p142)
하지만 이미 이런 자각을 했다는 자체가 희망적이지 않을까. 사람이니까 욕망이 있다. 잘 살고 싶고 다른 이보다 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인간은 욕심이 있는 존재이기에 발전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좀 더 나은 이웃이 되고 싶은 마음, 그런 사람이 하나하나 늘어갈 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누구나 마음속에서는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에 위안을 느낀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중략)‘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p214, <레몬케이크>)
여러 편 중 맨 마지막 작품 <빗방울처럼>이 제일 좋았다. 사회 문제가 될 만큼 떠들썩했던 전세 사기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실제로도 많은 청년층 가구가 이 피해를 당했고 기성세대를 안타깝게 했었다. 독서 교실 방문교사 일을 하는 지수는 남편 수호와 함께 새 아파트로 이사할 날을 학수고대하던 어느 날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고액의 대출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 주인과는 전화통화가 되지 않고, 천장에선 물이 새고, 이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하며 지수 부부의 삶은 급변하게 된다. 할 수 없이 대출을 얻어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게 되고, 급기야는 수호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한 조각 희망을 품고 살아가던 소박한 일상은 갑자기 불어닥친 불행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세상을 살다 큰일이 닥치면 대개는 세상을 원망한다. 하지만 지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던지 체념하고 만다.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라고, 내 차례일 뿐이라고, <안녕이라 그랬어>의 ‘나’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을 받아들인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본문 중에서)
오늘 우리는 이런 말을 이웃과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가. 이웃의 안부는커녕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과 마주 보는 일도 힘든 세상이다. 지수는 외국인 도배사가 안방 천장을 보고 했던 그 말, 정중한 안부의 말을 떠올리며 어떤 결심을 바꾼다. 그리고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p294)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회학자라고 규정할 만하다고 했는데 그 말에 백번 공감할 수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사회의 고통과 불안,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려냈다는 것,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시선을 보내야 한다는 것, 소설가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도. 소설 쓰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한 후 읽어서인지 그동안의 소설 읽기와 달리 깊은 감동이 전해졌다. 우리의 삶이 문학을 통해서 재현되고 그것을 읽고 나누는 과정에서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소설가란 대단한 사람이라는 존경심이 일었다. 열심히 읽어야겠다. 한국 소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