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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서재

누마다는 검둥이한테만 말을 걸었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집안 사정을 털어놓지 못하는 그에게, 울적하고 괴로운 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상대는 검둥이뿐이었다.
"이젠 싫어. 밤이 되는 게 싫어.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릴듣는 게 싫어"- P108
검둥이는 가만히 누마다의 얼굴을 보고, 당혹스러운 듯 꼬리를 살포시 흔들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산다는 게 다 그렇습니다.)- P109
검둥이는 그때 대답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누마다는 당시일을 떠올리고, 검둥이가 분명히 소년인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빠 엄마랑 따로따로 살자고 말씀하셨어. 난 어떡하지?"
(어쩔 수 없습니다.)
검둥이는 그 무렵의 그에게는 슬픔의 이해자이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단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이며, 그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P109
검둥이는 큰길을 돌고서도 여전히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치 이것이 누마다와 자신의 마지막 이별인 줄 아는 듯했다. 그런데 이윽고 지친 검둥이는 걸음을 멈추고, 떠나가는 누마다를 체념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조금씩 자그마해져 갔다. 그 검둥이의 눈길 역시, 누마다는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했다.
그가 이별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리와 이 개를 통해서였다.- P110
(만약 그 무렵 검둥이가 없었다면...) 후일에 누마다는 생각한다. (내가 동화를 쓰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검둥이는 동물이 인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걸 그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개였다. 아니,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슬픔을 이해해 주는 동반자라는 사실도 알게 해 주었다.- P110
누마다는 생명을 지닌 만물과의 유대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소년 시절, 검둥이의 존재가•부여해 준 씨앗이 마침내 싹을 틔워, 그에게 동화 속에서만그려 낼 수 있는 이상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동화 속에- P114
서 소년은 꽃이 속삭이는 소리를 알아듣고, 나무와 나무의 대화도 이해하고, 꿀벌이나 개미가 저마다 동료들과 나누는 신호를 읽어 낼 줄도 안다. 한 마리 개와 한 마리 코뿔소새가 어른이 된 그의 어찌할 도리 없는 쓸쓸함을 서로 나눠 가져 주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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