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스릴러라니. 익숙하지 않은 장르라 고민했지만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만 믿고 일단 서평단 신청을 해봤는데, 덜컥 선정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 읽고 나니 그 추천사가 이해된다. 죽은 이들을 잊지 않고, 죽은 이들이 남겨진 이들에게 남긴 것들의 가치를 알고, 살아있는 이들을 지키고, 살아날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 자주 잊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다정한 글이, 그리고 다정한 글을 쓰는 사람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따스함을 나누기를 바란다.
📌 미래가 하는 일은 전부 어렵고 고민할 이유가 없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미래가 그런 고민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런 고민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나인, 미래, 현재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 좋다. 이들은 서로의 비밀에 대해, 고민에 대해 자신의 기준대로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서로 비밀을 만들지 않지만, 비밀을 캐묻지도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기다리고, 말하면 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꼭 식물을 닮았다.
📌 피가 극도로 식으면 어는점에서 굳는다. 끓는점의 폭발은 분노와 모멸이고 어는점의 폭발은 상처와 서글픔 같다.
📎 내가 어는점에 닿았던 순간을 생각한다. 나는 타인을 그곳으로 데려가지 않기를 다짐한다.
📌 나인이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도 나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아는 인간이 아무도 없으니까. 그럼 모든 게 다 잘 풀릴 텐데.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잘 풀리는 게 아니다. 풀려야 하는 어떤 일을 영원히 풀지 못하도록 묻어 버리는 것이다.
📌 그런 마음은 가지고 태어나는 건가 봐요.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같아요. 가끔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나인도 그런 애 같아요. 사람을 살리는 일에 이유를 두지 않는다. 요즘 그 애는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함께 구하려고.
📎 주인공 '나인'은 [보건교사 안은영]의 은영을 닮았다. 자기도 모르게, 어쩌지도 않았는데 영웅의 힘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누구도 영웅의 책임을 지우지도 않았으며 모른 척 하더라도 역시 그 누구도 모를 텐데, 스스로가 위험해질 것을 감수하더라도 기어코 진실과 싸우는 인물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얼떨결에 주어진 영웅 역할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런 인물들은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