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면,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 아직 훨씬 더 어린아이라면 또 머지않아 그 길을 지나갈 것이다. 필통에 필기구를 넣고 노트를 가방에 넣고, 그것을 가지고 학교와 집을 왕복하는 시기.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학교는 누구나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매우 좋은 창작의 무대다.
그 와중에 그 필통 안에 무엇을 넣는지는 모든 학생이 다르다. 얼핏 돌아봐도 연필이나 샤프나 볼펜 한 자루 정도만 있어서 필통조차 들고 다니지 않던 아이도 있는가 하면 수시로 필통을 바꾸고 내용물을 가득 채우며 흔히 말하는 하이테크C 젤펜을 수십개씩 들고 다니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어떤 펜이 유행할까 같은 것은 학교를 졸업하면 아무래도 문구류를 쓰고 즐기는 취미를 유지하지 않는 한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꿰고 다니던 회사별 노트의 질감도, 노란색이라면 노란색으로 핑크색이라면 핑크색으로 모든 회사의 노란색 펜을 사던 정성도, 형광펜을 종류별로 사모아 비교분석을 하고 결국 쓰지 않게 되던 노력도 학생 시절의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생활의 일부였던 것이 학교를 떠나면 통째로 사라질까? '올리브색이 없으면 민트색도 괜찮아'는 그런, 나의 필통을 채웠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묶어 책으로 만든 느낌의 소설집이다. 등장인물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도 있고, 어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평범한 일상에서 문구가 주인공이 아니지만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내 필통처럼 항상 내 곁에 있는 이야기들을 그린다.
졸업한 지 이미 오래 지나 나는 제트스트림을 여럿 거느릴 필요는 없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책을 읽기 전만 해도 문구류에 관한 소설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 읽고 난 후에는 한 권의 필통 안에 수많은 문구류들을 가득 채워 돌려받은 기분이다. 그런데 지금, 바로 지금 필통을 두 개씩 가방에 넣어서 다니는 어린 친구들이 이 책을 만나면 얼마나 기쁠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친구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나 궁금하고 또한 부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