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 장자니 공자니 하는 그런 사상에 대해 전혀 모르던 그 시절, 푸세식 변소에 앉아 응가를 누우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응가를 더럽다고 말하지만 이 응가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식량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응가 밑엔 희멀건 구더기들이 꾸물대고 있었기에, 그들을 염두에 두고 한 생각이었다.
시골에서 자라, 산에 들에 뛰노는 동물이나 집에서 기르는 가축 그리고 야생식물과 농작물 같은 동식물에 친숙한 삶을 살았던 내게 구더기 역시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구더기가 더럽게 여기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인 내 입장에서 그럴 뿐이지 생명은 소중하다는 입장에서 볼 때는 다같이 귀한 목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의 먹이인 응가가 꼭 더럽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뿌리 깊은 유가 사상 속에서 살고 있었기에 내가 했던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똘아이'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사람은 귀한 것이고 구더기는 더러운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하는 마음'이 나는 싫었다. 그리고 분별심이 싫은 마음은 사람과 사람을 구별하는 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돋보이는 것은 못 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잘 하는 아이만을 높이 평가하고 못 하는 아이는 없신여기는 것도, 나는 못 마땅했다.
장자라는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그 철학적 깊이도 모르면서 자꾸만 장자에 빨려들어 여러번 읽기를 시도한 것은 내가 바로 장자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노자, 장자 철학책을 이것저것 읽었지만 명쾌하게 정리되는 것은 없었다. 이해하기엔 내 사고력이 부족한가 싶어 자책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명료하게 잡히는 것이 없어서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 '만화 장자'를 읽으면서 장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물론 내 방식대로의 해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장자가 말하는 '도'란 바로 '완전한 자유'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물욕, 명예욕, 권력욕 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그래서 자신이 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요 즐거움일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는 '본성'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축축한 흙속이 좋은 지렁이에게 에이스 침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본성대로 그들의 적성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각자의 색깔대로 사는 것에-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행당된다.-어떤 평가도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그들의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았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유가적인 입장에서 군자니 충신이니 효자니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구별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고 인위적인 것은 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입장이 아닌 각자의 입장에서, 구별이 아닌 하나라는 입장에서, 인간만이 아닌 우주만물의 입장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입장에서 볼 때 장자의 사상은, 상대주의를 중요시 여기며, 개인의 인권뿐만 아니라 만물의 생명권을 모두 중요시 여기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사상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