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에게 이따금 묻는다. ‘언제 철들래?’ 서른 중반인 나조차도 때를 모르고, 철든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직 어린 아이에게 푸념을 했다니 얼굴이 붉어진다.
계절의 흐름을 피부로 가까이 느끼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 몸을 통해 나온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때가 언제 인지, 날씨는 어떠한지, 놀이터 가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좋은지. 지금 나는 채소와 과일은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름 한철 맛있게 먹었던 수박이나 참외를 이제 겨울에도 맛 볼 수 있고 포도는 사계절 내내 구입할 수 있어서 제철과일이라는 말이 무색하지만 우리 땅에서 제 힘으로 자라난 것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억지로 키워내느라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쓰고 온도 조절을 하느라 탄산가스를 배출하게 된다. 제철채소나 과일을 먹는 것은 흙이 농약이나 비료로 오염되지 않으니 자연에게 좋고 먹는 이들에게도 좋고 작은 실천이지만 길게 보면 선순환을 이룬다. 늘 맛 볼 수 있는 것은 귀하지 않다. 수박을 좋아하는 두 아이는 더운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절기 살이란 ‘지금 여기에서’ 다른 생명과 서로 잘 소통하며 사는 삶이라 한다. 지나간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내 영역 밖의 것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다음은 절로 이어지고 맺어진다’는 구절이 위로가 된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지난 8년의 시간 동안을 떠올려 보면 아이가 커갈수록 자꾸 뒤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하며 보낸 오늘이 많은 것 같다. 걱정하고 불안해한다고 미래가 밝아지는 것도 아닌데 소중한 시간을 오롯이 즐기지 못한 것이다. 헤아려보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몇 년 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지금이 어떤 때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나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관심과 시간을 내어주는 때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면역력인데 더 부지런히 집 밥을 지어 먹이고 따스한 해를 충분히 보고 뛰어 다닐 수 있게 나가야지. 놀이터에서 놀기 좋은 날이란 없다. 매일 매일이 놀기 좋은 날이기에..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밖의 시간을 주는 아이들 덕에 기미가 늘었다. 거울을 보면 어색한 모습이 보인다. 한번 슬쩍 웃어본다. 감정표현이 서툰데 웃는 연습을 해봐야지 생각한다. 많이 웃고 많이 감탄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끓이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널고 정리하고 바깥 놀이를 다녀오고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별일 없는 하루가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루하루 다르다. 창가에 있는 무늬 벤자민 고무나무 잎이 눈에 띄게 무성해진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은 질척해지기 마련이라는데 이 책을 통해 절기를 자세히 알게 되고 나침반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오랜만에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작은 목표를 세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