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어째서 나이가 들어도 쉬워지는 것이 없을까? 생활의 달인처럼 손에 익으면 오래하면 뭐든 바로바로 순식간에 해치우는데 인생은 아무리 살아도 달인처럼 되기는 힘들다. 그래서 매번 허둥거리고, 흔들리고 그리고 실패한다.
나이를 먹을만큼 많이 먹었다고 생각하는데도 지금도 마음이 유리잔에 부은 물처럼 작은 힘에도 자주 요동친다. 그래서 찾은 것이 철학책이다. 이 책은 철학전공자 기시미 이치로가 명상록의 구절을 자신의 삶의 경험을 곁들여 소개한 책이다. 그래서 더 잘 이해되고 읽을 때 자주 멈춰 내 삶도 돌아보게 했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다. 황제라면 살기가 얼마나 쉬웠을까 싶겠지만 그는 로마를 호시탐탐 노리는 외부의 적과 매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해야 했고 내부의 적과도 싸워야했다. 특히 가장 신뢰했던 신하가 반란을 일으켜 그는 절망하기도 했다. 14명의 자녀 중 8명의 자녀를 잃는 고통을 겪었고 철학자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원치 않는 황제를 해야만 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 글을 썼다. 아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로마사람이었는데 그리스어로 일기를 썼다. 다른 사람이 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자기 자신을 ‘너’라고 부르며 자신과 대화하고 있다.
이 책의 대다수는 내면의 평화와 자기 통제에 관한 글이다. 낮에는 황제가 되었다가 밤에는 철학자가 되어 자신의 고통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며 고통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괴로움을 어떻게 해서든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 다독이는 것을 보면 슬프기도 했다. 권력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그의 적대자들에게 혐오 대신 포용을 선택했다. 완력보다 설득을 선택했다. 자신이 가장 믿었던 신하가 반역을 꾀했을 때도 그랬다. 그가 산 채로 잡혀 오길 바랐다. 그래서 그를 설득해서 다시 옳은 방향으로 같이 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시신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그의 죽음을 원통해 했다. 그는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는 것은 인간 본래의 존재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래 인간은 협력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믿음을 보인다. 나는 그 모습이 철인답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그렇게 생각해야만 우리는 그런 방식의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거의 없는 듯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도, 외부의 말 한마디에 쉽게 마음의 평정이 무너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쩌면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000년 전 아우렐리우스의 지혜가 여전히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서평단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했을 때, 그 사람에게 계산서를 내미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은 계산서는 내밀지 않더라도, 상대를 마음속에서 채무자로 여기며 자신이 한 일을 의식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의식하는 일 없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니, 열매를 내주고는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포도나무와 닮았다. 포도나무가 때가 되면 다시 열매 맺는 일로 옮겨가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도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다른 일로 옮겨간다. 또 달리는 말, 사냥감을 쫓는 개, 꿀을 모으는 꿀벌처럼 선행을 베푼다.-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