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연차만큼의 몫을 그럭저럭 해내는데, 퇴근하고 거울 앞에 서면 여전히 서툴고 불안한 얼굴이 있어요. 그 간극이 요즘 부쩍 크게 느껴졌습니다. 감정을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라 서점을 서성이다가 《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를 집어 들었어요.
처음엔 작법서인 줄 알았습니다. 문장 잘 쓰는 법 같은 걸 알려주겠거니 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백지 앞에 앉아 자기 안의 것들을 하나씩 꺼내놓는 기록에 가까웠습니다. 잘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쓰다 보니 자기가 조금 달라졌더라는 이야기요.
오래 머문 대목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그냥 적어보라는 부분이었어요. 머릿속에서만 맴돌 때는 그게 나를 통째로 삼킬 것처럼 크거든요. 근데 종이에 적고 나면 그냥 몇 줄짜리 글자가 되어 있더라는 거예요. 저도 예전에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노트에 뭔가 갈겨쓴 적이 있는데, 아침에 다시 보니 별것 아니어서 좀 민망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게 이런 원리였구나 싶었어요.
실수한 날들을 적으면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대목도 한참 붙잡고 있었어요. 남이 해주는 위로는 듣는 순간엔 고마운데 돌아서면 흩어지잖아요. 내가 나한테 쓴 문장은 좀 다르더라고요.
읽으면서 뜨끔했던 건 저는 늘 누가 볼 걸 전제로 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기조차도요. 나중에 누가 읽으면 어떡하지 싶어서 감정을 반쯤 접어 적었거든요. 그러니 남는 게 없었죠.
그날 밤 오랜만에 노트를 폈습니다. 대단한 걸 쓴 건 아니고 그냥 요즘 힘들다고 몇 줄 적었어요. 다 쓰고 나서도 달라진 건 없었는데, 이상하게 잠은 좀 잘 왔습니다.
여전히 저는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아요. 다만 흔들리는 걸 숨기려 애쓰는 시간이 조금 줄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부서지고 다시 이어 붙이면서 사는 거, 그게 원래 어른의 모양일지도 모르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