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뉴스를 볼 때마다 이유 모를 불안에 쫓기는 날이 많았어요.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제 통장은 제자리고, 다들 뭔가 아는 눈치인데 저만 모르는 것 같고요. 그러다 문득 이 판이 대체 어떤 원리로 굴러가는 건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집어 든 게 애덤 스미스였어요. 딱히 답을 기대했다기보다는, 뭐라도 붙잡고 싶었던 쪽에 가까웠죠.
저는 이 사람을 무한 경쟁의 원흉쯤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각자 이기심대로 살면 알아서 굴러간다고 말한 사람. 그런데 읽어보니 원래 도덕 철학자였고, 인간이 왜 남의 처지에 마음을 쓰는지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더라고요.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건 정육점 주인의 자비 덕분이 아니라 그가 돈을 벌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문장도, 냉소라기보다 관찰처럼 읽혔어요. 인간이 원래 이렇게 생겼으니 이걸 전제로 사회를 짜자는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핀 공장 대목이었어요. 혼자 만들면 하루에 스무 개도 벅찬데 공정을 열여덟 단계로 쪼개면 수천 개가 나온다는 이야기요. 처음엔 그냥 생산성 얘긴가 했는데, 읽다 보니 제 회사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그 열여덟 단계 중 하나를 맡고 있는 셈이잖아요. 제가 만드는 게 뭔지 잘 모른 채로 하루를 채우는 기분이 왜 드는지, 그 이유를 여기서 본 것 같았어요.
의외였던 건 담합과 독점을 향한 서늘한 경계였습니다. 시장을 옹호한 사람이 정작 시장 안의 사람들을 가장 의심하고 있더군요. 자유롭게 두라는 말이 아무렇게나 두라는 뜻은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읽고 나서 제 통장이 달라지진 않았어요. 이번 달에 얼마를 벌 수 있는지도 여전히 모릅니다. 다만 뉴스를 볼 때 예전보다 덜 놀라게 된 건 있어요. 숫자 하나에 심장이 내려앉기 전에, 이게 어떤 흐름의 한 조각인지를 먼저 헤아려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여전히 경제를 잘 모릅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모른다는 사실에 예전만큼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예요. 차트를 들여다본 한 시간보다 사람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생각한 한 시간이 더 오래 남을 때도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