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증정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림이 말을 걸 때 - 이수정
2025. 6. 15 ~ 2025. 6. 28 (336p)

수년전 업무가 잘 풀리지 않아 한창 힘들던 시기, 우연히 한 온라인 갤러리에서 발견한 무명작가의 석판화에 마음이 빼앗겨 난생 처음 미술 작품을 한 점 구입한 적이 있었다. 그림에는 작은 소쿠리를 등에 메고 깊은 산 중 시내의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부드러운 색감에 한참을 들여다보며 긴장되고 지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었다. ‘그림이 말을 걸 때’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 ‘이수정’은 예술 전문 강연자이자 아트 스토리텔러이다.
25년간 기업 교육 현장에서 활동한 강연자이자, 예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심미안 학교’ 대표로 활동하며 서양미술사와 예술 인문학을 바탕으로 예술을 통해 자기 삶을 더 잘 살아내는 법을 함께 탐색하는 여정을 ‘insigh-t-ravel'이라 이름 짓고, 왕성하게 강연하고 여행하며 글을 쓰고 있다.
‘스토리텔러’인 작가는 ‘그림이 말을 걸 때’를 통해 수많은 예술가들과 작품들 자체에 대한 해설은 물론 예술가들의 개인적인 삶과 작품에 얽힌 흥미로운 비사들을 통해 수많은 그림들을 풍성하게 ‘들려준다’.
작가는 1장 ‘그림 속에 내가 있었다’에서 예술은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 속의 언어이며 그것을 알아보고 느낄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예술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은 ‘아름다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삶과 같이 희망과 절망, 환희와 공허, 미(美)와 추(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서로를 넘나드는 극적인 이야기이다. 사랑과 희망, 슬픔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사력을 다해 이 보편적 감정을 작품에 담아낸 예술가들 덕분에 우리는 그림 속에서 어느새 나와 닮은 감정을 가진 대상을 발견하고 그를 통해 나의 삶을 새롭게 인식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2장 ‘예술가의 상처와 삶을 견디는 그림들’에서는 천재라고 불렸던 예술가들의 위대한 작품 뒤에 숨겨진 그들의 소박하고 고단했던 삶을 조명한다. 권력의 도구이거나 혹은 권력에 맞서는 기록자로 찬란한 영광과 처절한 몰락이 교차하는 무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칼날 위를 걸었던 궁정 화가들의 이야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으며 작품에 열중했고 죽기직전까지 ‘피에타’를 조각했던 미켈란젤로, 그런 미켈란젤로와 경쟁하면서도 그를 존경했던 라파엘로 그리고 프리다 칼로, 샤갈, 수잔 빌라동 등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진 사랑이라는 운명에 휩쓸린 예술가들의 모습은 그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임을 보여준다.
3장 ‘그림, 또 하나의 언어’에서는 전설과 신화, 문학과 종교, 역사와 문화를 담고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그림의 또 다른 역할에 대하여 설명한다. 특히, 현대 판타지 문학, 영화,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라파엘 전파의 중세 도상학적 이미지와 낭만적 미학은 작품의 아름다움은 물론 그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까지도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마지막 4장 ‘그림 너머의 모든 것’에서는 그림을 단지 물감과 형태의 조합만으로 보지 않고, 그 작품이 얼마나 많은 손과 운명을 거쳐 지금 눈앞에 도착했는지, 그림 밖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맥락과 서사에 귀를 기울여 그 예술의 더 깊은 숨결을 찾아내는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캔버스 밖의 무한한 서사는 그림의 색채와 질감을 새롭게 흔들고 그 작품의 가치를 재정의 하기도 한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위작을 제작했던 네델란드 작가 ‘한 판 메이헤런’의 이야기는 예술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이며, 우리가 감동받고 영감을 얻는 것은 작품의 어떤 가치로부터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일으킨다.
이 네 개의 장에서 들려주는 흥미로운 그림 이야기들은 모두 일상 속에 머무르고 있는 예술을 잘 알아보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발견한 예술을 통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역설적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역설적 가치는 작품에 담긴 예술가들의 감정과 이야기들, 그 시대의 공기, 그리고 작품에 얽힌 고유한 서사들을 따라가는 여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고유하고 특별한 방법이 되어준다.
“그림 앞에서 멈추는 순간 삶은 비로소 깊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