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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274님의 서재
  • 펄럭이는 세계사
  • 드미트로 두빌레트
  • 19,800원 (10%1,100)
  • 2025-05-12
  • : 519

* 출판사로부터 저적을 증정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펄럭이는 세계사 -드미트로 두빌레트

(인간이 깃발 아래 모이는 이유)



세계의 여러 국기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운동회 날 높이도 걸려 있던 만국기들과 함께 그 무렵 한창 즐겨했던 보드게임 부루마불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고가의 보드게임이라 사촌형의 집에 가야만 할 수 있었는데, 각국의 수도에 할당된 게임카드의 그림 덕분에 자연스럽게 많은 나라의 국기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삼색의 가로줄 혹은 삼색의 세로줄로 이루어진 국기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외워지지 않고 헷갈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건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펄럭이는 세계사’를 선택한 이유는 이런 오랜 무지를 털어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목차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난해했던 삼색기를 필두로 수많은 나라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과 도형, 색깔 등으로 구분지어진 목례는 언젠가는 풀어내고 싶었던 마음 한켠의 답답함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구글의 힘을 빌어 ‘드미트로 두빌레트’의 약력을 검색해보니 우크라이나 정부 홈페이지에 내각 장관으로 올라있는 작가의 약력을 찾게 되었다. 1985년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에서 태어난 작가는 키이우 타라스 셰우첸코 국립대학교와 런던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1999년부터 주로 은행 관련 업계에서 활동하였으며,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PrivatBank 이사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우크라이나 최초의 모바일 은행인 Monobank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며, 2019년 8월 29일 우크라이나의 내각 장관으로 정부의 일원이 되었다. 오랫동안 역사와 기학(旗學, vexillology)에 관심이 있던 저자가 본 서를 출간한 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6개월 전이었다. 책의 원제는 ‘How the Tricolor Got Its Stripes: And Other Stories About Flags’이다.

 

작가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중계 화면 한구석에 위치한 알록달록한 사각형의 국기들을 보며 깃발에 대한 흥미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깃발을 따로 연구하는 학문을 ‘기학’ 또는 ‘기장학(旗章學)’이라고 한다. 문장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을 문장학(紋章學, heraldry)이라고 하는데, 기학이라는 학문이 문장학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학문으로 둘은 밀접한 관계일 수 밖에 없겠다. 깃발은 문장에서 발달했고, 문장이 깃발 속 도안으로 채택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며, 가끔은 깃발이 문장의 한 장식으로써 구성될 때도 있다.

 

이러한 작가의 학문적 관심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세계사’는 가로, 세로의 많고도 많은 삼색기를 구성하는 색깔들과 유니언잭, 십자가와 독수리, 오각별과 육각별을 포함한 수많은 별들과 태양과 초승달 그리고 각양각색의 국장들, 그 외 백합과 올리브가지 등 수많은 상징들의 함의를 설명한다. 신화와 전설, 고대와 중세를 거쳐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어 온 깃발이 있는 한편, 식민지 시대를 거쳐 지배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거나, 독립을 위해 피 흘리며 쟁취한 역사를 담아 마침내 만들어 낸 깃발도 있다. 그 어떤 역사를 가진 국기이든 그에 담긴 상징은 대부분 그 나라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담고 있다. 독재와 폭압, 이념이 강제되는 시대에 폭거자들의 의지대로 만들어졌던 깃발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독재자나 이념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깃발과 깃발들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각국의 얽히고설킨 역사와 문화에 닿아있다. 깃발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강대국들은 물론이거니와 막연하게 이름만 알고 있던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게 되고, 이 세계와 세상이 얼마나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으며, 의도와 무관하게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훌륭하게 그룹화 시키고 노련한 흐름으로 흥미롭게 풀어가는 작가의 재담 덕분에 시중의 본격적인 역사책보다 더욱 흥미롭고 오래 기억에 남을 진짜 ‘세계사’를 배울 계기가 되었다. 성인은 물론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치트키가 되어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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