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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그리기님의 서재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강창래
  • 14,220원 (10%790)
  • 2018-04-20
  • : 3,964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한 아내 대신 음식을 만들게 된 요알못 남편의 요리 이야기.
자신이 만든 음식만 먹을 수 있게 된 아내를 위해
웬만한 요리사 뺨칠만큼 재료를 손질하고 깊은 육수를 내고, 정성스럽고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낸 그만의 조리법들이 담담하게(몇스푼, 몇꼬집 하는 식의 흔한 계량도 없이) 펼쳐져 있다.
책 소개를 읽을때 예상했던 아내의 투병 과정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별의 이야기는 없다.
그저 아내가 먹고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요리법을 알아내고, 좋은 식재료들을 찾아 장을 보고 애정과 기도를 담아 정성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그의 하루 하루들이 담백한 요리처럼 펼쳐져 있을 뿐.
그럼에도 추천의 글부터 마음이 울컥 해지고,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한 문장으로도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스런 상황들이 익히 짐작되어 읽는동안 몇번이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내가 떠나는 날의 이야기도 없다.
그저 아내가 떠난 후 남겨진 그가 이젠 자신을 위해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며 다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날들의 레시피가 담백하게 이어질 뿐.
그리고 그렇게 버텨가는 어느날의 이야기로, 그 흔한
미래에의 희망이나 기대에 관한 마무리 문장 하나 없이 책은 끝난다.
그래서 정말 좋다.. 고 느낄 수 있었던 책.

사실 이 책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그 엄청난 슬픔을 감당해낼 수가 없어 죽음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대로 사서 읽던 때에 사둔 책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그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아 몇번이나 꺼냈다가 다시 책장에 넣어둔 채
숙제처럼 바라보기만 했었다.
읽고나니 그때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차라리 다른 책들보다 조금 더 위로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처럼 죽음도 우리와 밀접한 삶의 한 모습이고, 결국 우리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있는 거니까.
엄마를 보낸 후 잠도 잘 수 없고 먹을수도 없던 시간이 지난 후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중 하나는,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잠이 온다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순간에 슬픔을 잠시 잊기도 하는 나의 본능이 너무 혐오스럽다는 거였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은 나를 덜 자책하며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아직은 내 속에 가득한 슬픔 때문인지 몇번은 가슴이 먹먹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읽어야 했고,
담담히 지나가버린 아내와의 이별 장면이 짐작되어
눈물이 흘렀고, 담백한 문장 속에서 남겨진 이의 아픔이 느껴져 시린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래도 이분은 참 행복한 이별을 하셨구나.
난 엄마를 위해 사랑 가득 담긴 음식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는데.. 그 자책으로 한동안은 또 마음이 좀 많이 아플것 같다.

간절함이 가득하지만 넘치지 않는다.
담담하게 레시피와 음식 얘기를 하고 있지만 위로와
감동을 준다.
고통과 아픔은 최대한 감추고 있지만 스민듯 배어있는 잔잔한 슬픔으로 읽는 내내 응원하게 된다.
담백하지만 진실한 산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책.
저자와 아드님이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그리고, 당장 냉장고 정리를 하고 이제부턴 좀 더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겠단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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