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축산농장에서 동물복지를 실현하려면 이처럼 동물복지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산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인증제도라는 것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결국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일종의 규제인데, 스스로 규제를 받아들이며 인증에 참여하려는 생산자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규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참여울이 어느 정도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에 따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동물복지 인증제도와 관련해 인증 절차, 평가 방식, 동물복지 축산물 구입처 등 모든 정보는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최근 축산물에 대한 정보 습득이 쉬워지면서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는 그들의 사육 환경에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관심이 동물복지 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지 않고 실질적인 구매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동물복지 사육 환경과 인증제도를 이해시키는 것에 보다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318쪽_돼지 복지
이 책은 동물자원과 전공 3학년 때 해야하는 목장 실습에서 양돈장을 선택해서 간 다음, 그곳의 처참한 환경을 목격한 뒤 동물복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핀란드에게 산업동물의 동물복지를 연구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윤진현 교수가 우리나라의 동물복지가 어떤 시설과 사육 방식으로 실현 가능한지 실제 사례를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양돈장의 현실을 파악하고 핀란드의 동물복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돼지의 복지를 위한다면서 돼지를 애지중지 키워 잡아먹는 건 괜찮고?"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축 전염성 질병의 확산, 축산물 유해 물질 잔류, 축산농가에서 발생한 항생제 내성균 등의 문제에 대해 현대식 집약적 축산에서 농장도물들은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품종만 선택되고 개량되면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같은 병원체에 저항할 수 있는 강건성이 떨어지고, 규모화된 사육 환경으로 전염성 질병이 확산되기 쉬우며 동물의 습성을 억압한 생산 시스템은 동물의 면역 체계를 손상해 질병으로부터 취약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산자는 값싸고 효육적인 방법으로 항성물질이 포함된 동물약품이나 합성 첨가제에 의존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작가는 현실적으로 동물복지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축산물 종사자, 동물복지 인증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향과 평가 지표를 고민하는 담당 관계자, 동물복지 축산물을 유통하고 싶지만 인증받은 농장이 턱없이 부족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기업체, 지속 가능한 축산 시스템을 공부하는 동물자원 전공 학생들이 동물복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보니 이곳은 창문이 없었다. 천장에 형광등이 있었지만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파리똥에 뒤덮여 이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환풍기 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 덕분에 내부를 겨우 살펴보았다. 콘크리트로 된 바닥은 절반이 막혀 있고, 절반은 줄무늬 형태로 틈이 있었다. 이처럼 바닥에 틈을 내어 분뇨가 밑으로 떨어지도록 설계한 구조를 '슬랫 바닥 구조'라고 한다. 그러나 막힌 쪽 바닥이 분뇨로 뒤덮여 있는 펜이 많이 보였다. 제한된 공간에 너무 많은 돼지를 키우다 보니 쉬는 공간과 배설하는 공간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돼지는 원래 잠자리와 배설 공간을 구분하는 영특한 본능르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소용이 없어 보였다.
보통 100kg의 비육돈 한 마리가 하루에 먹는 사료량은 약 2.7kg인데, 배설하는 분의 양은 약2kg, 오줌은 약 3kg 정도 된다. 이렇게 배설된 분뇨가 밑으로 빠지지 않고 바닥에 남아 있다 보니 돼지들의 몸은 온통 분뇨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코와 눈을 마비시키는 지독한 악취의 발원지가 바로 그곳이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돼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돼지들의 기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목에서 나온느 얕은 기침이 아니라 호흡기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기침 같았다.
36쪽_돼지 복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 속의 돼지, 축산농가의 돼지, 마트에 포장육으로 진열된 돼지를 모두 같은 돼지로 인식할 수 있을까. 모두 돼지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마트에 진열된 포장육을 보고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축산농가 돼지를 떠오르기는 쉽지 않다. 포장육은 돼지의 사육 환경과 사육 방식이 생략된 채 깨끗한 결과물로만 소비자에게 보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번에 읽었던 《더티 워크》가 '더럽거나 오염된 것들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뒤편으로 치워버린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그것들은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인간적 산업 시스템, 지역 사회와 정부의 겉핥기식 대응, 자본주의 및 소비자 사회의 과도한 이윤 추구, 대중의 무관심이 합쳐지면서 이러한 더티 워크는 지속되고 심화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돼지 복지》도 《더티 워크》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2021년 134개소의 양돈 농가를 조사했을 때, 약 60%의 농가가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는 의향이 있다고 답한 데 반해, 실제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양돈장은 0.3%에 그쳤다.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세상 거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동물복지 실현으로 나아가는 길에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실제로 동물복지형 농장이 자리 잡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동물복지 축산물이 활발히 거래되는 시장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도록 우리 눈에서 치우는 방식이 아닌 투명하게 과정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