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주목이나 관심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즐기긴커녕 경계심이 강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얼굴을 노출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동물들의 비참한 처지를 인정하고 나니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안전하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인데 이것마저 누군가 해주길 바라면서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든 영상이 누군가에게 비건이 되는 출발점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온라인에 영구히 흑역사를 남기게 되더라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백문불여일식 百聞不如一食.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먹어보는 게 낫습니다. 백 마디 옳은 말보다 맛있는 밥 한 그릇이 훨씬 설득력 있고, 비건이 옳다고 설득하기 위해 진을 빼느니 맛있는 비건식 한 끼 대접하는 게 낫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하지만 일일이 먹여줄 수 없으니 대신 레시피를 알려드리기로 했습니다. 자,여기 맛 좋은 레시피입니다. 이제 남은 미션은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불어일으키느냐입니다.
비건한 미식가_ 7 ~ 8쪽
"지구에 덜 빚지는 식사를 차리고 모두와 연결되는 삶을 살고 싶은 초식마녀"
무기력한 순간이 찾아오면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를 대접하는 초식마녀의 비건 식탁 에세이에는 비건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 작가의 일상이 담겨있다. 귀여운 일상 툰과 31가지의 채식 레시피에 깃든 이야기에서 작가는 '죽음 없는 재료'를 사용해서 비건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책에 나오는 작가의 소소한 생활과 레시피와 그림은 따뜻하지만, 동물이 아니라 고기로 태어나서 비참한 환경에서 살다가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의 처지와 육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오염과 무수히 늘어나는 쓰레기, 다양성의 감소 등에 대한 작가의 말은 단호하다.
작가가 비건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건 요리를 만드는 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을 때 영상을 보고 비건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람들, 비건 생활이 외롭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들, 다양한 비건 요리를 해먹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응원을 주기도 했지만 끝업이 찾아와서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건 할 거면 혼자 하라는 사람들, 강요하지 말라는 사람들, 식물은 안 불쌍하냐는 사람들. 작가가 올리는 영상은 비건 레시피인데, 굳이 와서. 게다가 작가는 강요하지 않았다. 비건을 해야 하는 이유를 레시피와 함께 보여줬을 뿐.
이 에세이를 읽다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설이 생각났다. 어느 날, 채식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주인공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가족들이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했던 장면. 고기를 먹지 않으면 비정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강제로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강요했다. 채식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잘못인 것처럼.
아마존의 산림 파괴와 고기와 유제품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농지 오염 등을 언급하며 비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은 주변과 연결되는 따뜻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재료가 많이 들지 않고 과정이 단순한 채식 레시피는 누구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예를 들어, 토마토 비빔밥의 레시파는 다음과 같다.
깨끗하게 씻은 토마토를 취향껏 잘게 잘라줍니다.
미지근한 밥 위에 토마토를 올려주세요.
고추장과 참기름을 한 숟갈씩 넣고
쫑쫑 썬 청양고추를 올려 골고루 비벼줍니다.
이렇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레시피는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쉽게 만들 수 있다. 부담이 없어서 당장이라도 해볼 수 있는 채식 레시피를 부엌에 두고 자주 이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부터 나는 고기 냄새를 맡으면 속이 좋지 않아서 되도록 고기 굽는 자리를 피한다. 마트에 가도 정육 코너나 생선 코너를 피해서 간다. 고기를 먹으면 속도 안 좋을 뿐 아니라 일단 맛이 없어서 먹기 싫었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도 먹고 싶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주말에 치맥을 자주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치킨을 씹는 느낌이나 맛이 싫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고 맛있는 채식 레시피 에세이가 반갑다.
비빔밥, 비빔국수, 시금치 김밥, 김치 칼제비, 토마토 알리오 올리오, 비건 마라탕, 애호박 파스타 등등.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많다. 비건에 대한 지식이나 명확한 의지는 아직 없지만, 고기가 싫어서 채식을 하는 과정도 육식보다 지구에 더 도움이 되는 행동이 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