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노엘과 점심을 먹었다. 노엘은 오늘도 사슴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들판을 걸었고, 나는 새벽 5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들판을 걸었다. 해가 뜨지 않았지만 들판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옅은 안개가 지표면을 덮고 있었다. 한번은 걷다가 하울의 성처럼 생긴 구조물을 목격했다. 구조물은 강 건너편에 있었고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것 같았다. 노엘은 그 건물이 낡은 극장이랬다. 허허발판에 다 쓰러져가는, 천장이 날아간 극장. 들판에 엎드려 숨 쉬는 커다란 짐승 같기도 하고 상상의 동물 같기도 해서 한참 쳐다보았다. 노엘은 그 극장에서 <올드 타운>이라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으니 보러 가라고 했다. 한 가족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인데, 극장에 천장이 없으니 밤이 오면 무대에 어둠이 깔린다고 했다.
들판은 광활하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고 싶지 않다. 끝까지 가지만 않으면, 끝을 보지만 않으면 끝이 없을 것 같다.
- 삶의 반대편데 들판이 있다면 205, 206쪽
아이오와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그곳에는 너른 들판과 윤슬이 빛나는 강이 있다. 낮에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걷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들판으로 걸어갈 수 있다. 시인은 말한다. '들판을 끝까지 가지만 않으면 끝을 보지만 않으면 끝이 없을 것' 이라고.
앞에서 인용한 구절에 나오는 노엘은 매일 들판으로 새벽 산책을 나갔다. 시인은 노엘의 새벽 산책을 의식처럼 여기며, 길이 아닌 길을 따라 걷는 것은 진짜 길을 걷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들판의 뜻은 사람이 걷게 만든 길은 아니지만 걸어도 괜찮은 길이라고 정의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들판의 반대방향으로 난 길로 가기에 삶의 반의어는 들판이라는 마음 속의 말을 따라, 시인은 들판을 걷기로 한다.
걷기로 했으면서도 들판을 끝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지켜보며, 오래도록 그런 길에서 비켜갔던 수많은 마음들을 응시했다. 꿈이 흘러가도록 길을 내어주는 시간을 불안하게 여기며 외면해던 그런.
"아이오와는 뭔가를 잊을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라던 동료 작가의 말을" "들판의 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시인에게 아이오와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국에 있을 때 시인은 강해져야 한다는 다짐 속에 살았지만, 아이오와에서 만난 따뜻한 시간들은 그렇지 않다고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시인은 변하지 않고 본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이 책은 시인 문보영이 지난해 3개월 동안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IWP)에 참여하며 만났던 다양한 엑소포닉(exophoix, 이중 언어자) 작가들과 지내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그 속에서 생각하고 깨달았던 순간들을 기록한 일기장이다. 그곳에서 문보영은 '달(Moon)'로 불렸다.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언덕에는 '달'의 이름을 딴 '달의 영역'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시인 문보영은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자신처럼 IWP 참가 자격으로 온 여러 작가들을 만난다. 코토미, 에바, 오릿, 야스히로, 메리 할머니, 츠베타, 라울 등. 일상의 언어를 뒤집어서 자신의 언어로 바꾸면서 기존의 세계를 부수고, 그렇게 깨진 세계의 조각들을 모아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래 붙박였던 무거운 현실을 벗어나서 조금 가벼워진 것일까. 이곳에 모인 작가들의 생각은 유연하고 행동은 유쾌하다.
처음 방을 배정받았을 때 창 밖의 전망이 좋지 못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망 없는 작가'들과 '전망 있는 작가'들로 작가가 구분된다. 전망 없는 작가들의 방에서는 온통 벽으로 둘러싸인 전망이 보이고, 전망 있는 작가들의 방에서는 들판과 강이 보인다. '전망'이라는 단어는 작가들의 사고에 의해 여러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한, 전망에 있는 종이컵이나 망가진 인형은 그들의 소재가 된다.
아이오와에서 지냈던 시간은 3개월이지만, 이중 언어자로 살아가는 작가들과, 이민자들의 삶을 목격하면서 시인의 마음에는 새로운 정체성과 모험의 씨앗이 움텼다. 만약 무거운 현실에서 계속 지냈다면, 아이오와로 가지 않았다면, 삶의 반의어를 들판으로 정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은 "들판은 이들에게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도망치는 작은 자유를 누리는 것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지만, 아이오와에 모인 작가들의 마음에 언어를 움트게 하는 씨앗이 없었다면, 들판은 그저 들판의 언어로만 작용했을 것이다.
들판으로 걸어가면 삶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판의 끝을 보지 않으면서 들판을 걷는 마음, 삶의 반의어가 들판이니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보며
삶을 너무 딱딱한 형태로 그리지 않아야겠다는 말을 뱉는다.
그리고 삶의 빛이 너무 적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책을 나는 그렇게 읽었다.
어느 새벽 클럽의 어렴풋한 불빛. 최소한의 불빛과 노래방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 살면서 많은 빛이 필요한 건 아니리. 어쩌면 빛 없이도 살 수 있으리. 다른 존재와 부딪히면 즉사하는 작은 개구리. 나의 개구리는 아주 소심하게 길을 건넜지. 극단적으로 소심해지는 것도 길을 건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 삶의 반대편데 들판이 있다면 201쪽
이 글은 한겨레출판사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이오와에서 돌아온 지 어느새 한 계절이 흘렀다.- 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