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학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종이신문 역시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같은 활자 매체로 문학과 신문은 어쩌면 같은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30년 동안 종이신문에서 문학을 담당해온 나로서는 더 늦기 전에 정년을 맞게 된 것이 일면 다행스럽다 싶기도 하다. 종이신문 문학 담당 기자의 정년퇴직이란 어쩐지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겠나. 아까운 지면에 이렇듯 소소하고 심란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어 독자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정년을 앞둔 퇴물의 넋두리라고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 들어가는 글
1988년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해 1992년부터 2022년까지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한 지난 30년을 저자는 "분에 넘치는 영광과 보람의 세월"로 기억한다. 일간 신문에 문학작품을 읽고 나름의 의견을 기사 형태로 제출하는 작업은 독서와 기사 작성을 동시에 해야 했으므로 시간과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학 기사를 위해 문인드을 인터뷰하거나 만나는 즐거움은 그에게 "그 무엇과도 바꾸기 싫을 정도"였으며, 자신이 스스로 '보물 1호'라고 일컫는 것은 "지난 30년 동안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문인들로부터 받은 편지와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스크랩"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깊은 애정과 진심이 있었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문학작품을 읽고 신문에 실을 기사를 작성하고 문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획기사를 위해 매주 출장을 떠나는 숨가쁜 일정을 해나갔던 것이 아닐까.
이 책에 수록된 직업인으로서의 최재봉의 글은 작가와 작품, 문학계 쟁점과 인물, 칼럼, 서평 등으로 이어진다. 3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읽고 쓰고 만나고 인터뷰한 결과물, 그 속에는 시대와 사람이 담겨있다. 사랑하는 문학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책,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이의 자신이 담겨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야기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저자가 쌓아올린 오랜 이야기들은 사람과 문학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빛들에는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작은 틈새를 메우는 것은 바로 저자 자신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무언가를 완성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가 세운 오랜 이야기에 담긴 것들이 부럽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듣는 이름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조세희, 박완서, 김소진,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품에 대한 글을 만나던 중 신경숙 표절과 부딪히게 되었을 때는 그시절의 기억이 새록 솟아났다. 일정 기간 동안 이슈가 되었다가 잊힌 이름과 작품들이 오랜 이야기 상자 속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글을 한 편 한편 천천히 읽어갈 때마다 시간을 꺼내먹는 것 같아서 기분이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