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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의 바다님의 서재
  • 전쟁 이후의 세계
  • 박노자
  • 18,000원 (10%1,000)
  • 2024-02-20
  • : 1,413

이 책을 집필한 목적 중 하나는 지금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도전해 2020년대 이후 다시 한번 글로벌 강대국으로서 세계 패권의 일부라도 나누어 가지려는 푸틴의 러시아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본 틀을 독자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러시아의 '연성 권력'(소프트 파워)이 왜 이토록 약한지, 왜 연성 권력과 경제적 비중의 부족을 군사주의와 침략 정책으로 '벌충'하려 하는지, 이 군사주의와 침략 정책들이 왜 70퍼센트가 넘는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인지, 왜 러시아에서 반전 세력들이 이토록 반전운동의 대중화에 실패했는지 등을 러시아의 역사와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두고 서술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 패권에 대한 푸틴 정권의 도전, 그리고 앞으로 러시아가 나름의 역할을 맡게 될 새로운 세계 패권 질서의 파악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전쟁 이후의 세계 -프롤로그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므로 평화의 옹호는 인간의 마음에서 건설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는 '유네스코 헌장' 전문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요소를 신뢰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평화를 옹호하는 인간의 마음은 좀처럼 건설되지 않고, 전쟁을 발생시키는 인간의 마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으니 전문은 전문일 뿐 현실은 이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을 넘어섰다. 전쟁 초반에 가졌던 강렬한 기세로 몰아붙인 러시아의 손쉬운 함락으로 금세 끝날 거라는 예측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 및 서방국가들의 제재로 인해 전쟁의 끝은 요원한 것만 같다. 하지만 만약 전쟁의 끝이 보인다고, 그 끝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토는 이미 황폐화된 상태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만약 '평화를 옹호하는 인간의 마음'에 불이 붙어서 전쟁이 극적으로 끝나게 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상황이 발생해서 전쟁이 극적으로 끝나게 되거나 했을 경우, 그것은 말 그대로 '엔딩'일 수 있을까.

한 권에 담긴 스토리로 엔딩을 맞을 수 없기에 현실의 전쟁에는 깔끔한 엔딩이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표면적인 종식을 맞이한다고 해도, 러시아가 10년 이내 에 나토와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블라디미르 티호노트'라는 러시아 이름을 가진 러시아 출신 지식인 박노자는 러시아 사회의 작동 원리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분석하여, 푸틴 체제의 침공 전략을 설명한다. 그뿐 아니라,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들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다원 패권 시대로의 이행을 알리는 징후로 해석한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러시아를 분석하고, 학자의 시선으로 시대를 분석하며 이끌어낸 통찰력으로 박노자 교수는 일명 전쟁의 시대에 전쟁 없이 평화로운 외교를 펼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에 중심을 둔 외교 및 안보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미국에 대한 맹종적인 태도를 버리고 한국 스스로가 주변 외교의 독립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노자 교수의 책 이전에도 윤석열 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취한 태도는 여러 우려를 낳았다. 한미 동맹 이전에 한반도의 평화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무력 갈등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평화 지향적 균형 외교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나라를 맹종하여 그와 대립되는 나라를 배척하는 식의 외교는 작은 불씨 하나가 거대한 화염으로 번질 수 있는 현재 국제 정세와 맞지 않다. 박노자 교수는 윤석열 정권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한미동맹 강화 정책으로 인한 관계 변화와 경제와 안보 및 외교에 대한 손익 결산을 정확하게 제시하며 초기 외교 정책에 대해 비판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과 러시아 관계의 "처참한 상태"에 대한 책임을 윤석열 정권에만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며 "어떤 정권이 집권했어도 일정 정도의 관계 악화를 강오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비판적인 시선을 분산시키면서도, "대미 충성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적 행동은 자제했어야 했던 것"이라고 실질적인 조언을 한다.

이 글의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박노자 교수는 독자들이 현재 세계 패권을 파악하는데 일부 목표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처럼 미국의 패권이 쇠락하고 세계 질서가 다원 패권 체제로 재편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는 말을 하며 미국과 일본 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북한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국가들과 평화 지향적인 외교에 나서야만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 위해 이 책에서는 다음처럼 4부에 걸친 내용을 담아 설명하고 있다.

1부 : “혁명의 국가” 소련은 어떻게 침략 전쟁의 주역이 됐나

2부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가

3부 한국과 러시아,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4부 포스트 워,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국형 열강 사이의 영구적인 경쟁을 의미하는 '다극'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미 제국 패권 체제도 그랬지만, 균세 시스템도 평화를 절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민초 차원의 평화 운동부터 그 힘을 키우고, 영구 전쟁 체제의 경제적 배경, 이를테면 전시 무기 판매 등으로 군수 복합체가 얻는 초과 이윤 등에 대한 '불편한 질문'들을 던져야 합니다.

전쟁 이후의 세계, p296

외교는 자국의 평화와 안전,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땅하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 파병에 대해, 나토는 "국제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그 권리는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할 권리가 있다"며 기존처럼 지원 가능성만 언급할 뿐 파병에 대해서는 "계획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미 백악관에서도 "우크라이나 군대가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필요한 무기와 탄약을 갖출 수 있도록 교착된 군사 지원 패키지를 통과시키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고 믿는다"는 말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미군 파병 안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책을 계기로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과 노선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실시간 전쟁 게임처럼 방송에서 전해주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만 하면, 평화를 옹호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은 언제 건설될 것인가. 그러한 인간의 마음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멈추지 않은 공부를 통해 조금씩 쌓이는 것이므로, 우리가 정말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작은 돌에 소망을 담아 탑을 쌓아가는 마음으로, 그렇게 평화를 옹호하는 인간의 마음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과 오랜 동맹 국가라고 표명하고 있는 미국의 울타리는 그다지 견고하지 않으며 이타적이지도 않다. 또한, 다원패권주의로 흐르는 시대에는 미국의 낡은 울타리 안에 갇혀 맴돌기만 해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의 평화를 중심에 두고, 여러 나라와 평화적으로 협력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원패권주의의 시대, 우리가 누구의 언어로 누구의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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