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도서실의 바다님의 서재
  •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조기현.홍종원
  • 18,000원 (10%1,000)
  • 2024-01-17
  • : 2,093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누구나 돌봄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돌봄의 가치는 그리 높게 평가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지난 팬데믹 시기에 돌봄 공백 및 위기에 대한 이슈가 떠오르면서 돌봄의 가치가 재평가되는 것 같았지만 돌봄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돌봄의 공백은 언제나 존재했다. 돌봄은 주로 여성- 직업상에서 돌봄자는 중년 여성 대대수, 가정내에서 돌봄자도 중년 여성 혹은 미혼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형태나 구성원 등의 변화로 인해 이제 남성 돌봄자들도 많아졌다. 그중에는 '영 케어러'일 것이다. 아직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돌봄자가 되어버린 영 케어러의 삶은 남녀를 떠나서 참으로 난감해진다. 사회에 제대로 진출하기도 전에 돌봄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경력 단절이나 사회 참여를 할 기회가 극히 줄어든다. 영 케어러가 짊어져야 하는 고달픈 현실은 결국 돌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것은 영 케어러 뿐 아니라 돌봄을 감당하는 역할자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앞으로 돌봄은 남녀 구분을 넘어서서 같이 감당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일이고, 오히려 왜 여성만 짊어져야 되는 일인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좀 더 나아가서 돌봄을 누군가가 짊어져야 되는 부담이라고 보는 관점도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모두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죠." (p27, 1장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다)


이 책은 스무 살 때 쓰러진 아버지를 10여 년간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등을 쓴 ‘영 케어러’ 조기현과 국내 최초의 방문진료 전문병원 ‘건강의집 의원’ 원장이자 《처방전 없음》의 저자인 홍종원의 대담을 실었다. 대담 진행은 김경훈 편집자가 맡았는데, 그는 관련 서적이나 기사, 자료 등을 꼼꼼하게 천천히 읽어가며 대담을 준비했고(이 과정을 본인은 비효율적인 준비라고 언급했는데, 그런 비효율적 작업으로 인해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눈이 하나 뜨였다는 말과 함께 효율이 세상을 지배해서 많은 존재가 소외되고 고통받고 있으니, 돌봄을 이야기하는 책에서만은 비효율적으로 작업하며,세계의 지배원리가 되어버린 효율의 원리를 의심하게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홍종원 원장은 프롤로그에서 "돌봄이 순환한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때로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이 책이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갈 돌봄의 동료에게 건네는 연서"라고 표현했다.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상상하는 이 의사와 "우리는 돌봄을 사회적 문제로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돌봄 그 자체의 가치를 말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이제까지 우리 모두가 취약하기 때문에, 취약해지지 않기 위해서, 취약해졌을 때 서로 의존하며 살아냈다는 걸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영 케어러 조기현 작가의 대담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있다.


각 장은 각각 돌봄의 관계, 돌봄이 필요한 시간, 돌봄의 동료들과 관계 맺기, 시설과 집의 이분법을 넘어서, 돌봄이 길이 되려면 이런 주제에 관한 대담을 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돌봄의 현실적 문제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돌봄의 지위와 가치를 만든 배경(배후)까지도 함께 설명한다.

예를 들면, 가장인 남성의 노동은 돈을 벌고 생계를 부양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가부장적 인식의 배후가 있다. 돌봄은 생산성이 없어서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성의 논리와 맞닿으며 더욱 돌봄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에서 돌봄을 새롭게 사유하고 재평가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고, 현재 닥친 돌봄 공백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


돌봄위기사회가 된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며 돌봄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넣을 것인지 고민하고, 좋은 돌봄을 하는 방법과 개개인이 안도감을 느끼는 장소와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대담은 돌봄을 중심에 둔 사회, 돌봄으로 재구성된 사회로 이행할 방안을 제시하며 긴 여정을 마친다.


돌봄과 공동체에 대한 대안은 현실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있으며 내면의 떨림을 진동시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대담자들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이야기로 퍼져나가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제가 많이 드는 비유인데, 대안이라는 말에는 "강, 호수, 바다 따위의 건너편에 있는 언덕이나 기슭"이라는 뜻이 있어요. 그 비유를 빌리면 우리는 다 이쪽 언덕에 있는 사람이고 저편 언덕으로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저 언덕에 뭐가 있는지, 우리가 정말 그곳으로 갈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어차피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게 가능해?' 라는 말이 잘못된 현실을 정당화하고, 변화를 막는 핑계로 작용할 때도 많고요.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