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별자리에 최초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 작가, 출판사, 독자 '셋'의 만남을 '셋(set)'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셋셋 시리즈의 첫번째 문을 여는 『셋셋 2024』를 읽었다. "지금 여기, 가장 빠르게 도착한 내일의 문학들"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시리즈는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소설가 3인과 시인 3인의 작품을 싣는다. 출간워크샵 프로젝트 『셋셋 2024』은 지난 여름 첫 심사를 시작으로 6개월 간의 작품 검토와 한 달 멘토링 과정까지 거친 뒤 독자들과 만나게 된 책이다.
처음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수록 작품들이 신인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크게는 두 가지 정도가 될 것 같다. 하나는 작품에서 신인답지 않은 안정감이 느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에서 신인다운 패기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랜 습작과 합평을 통한 단단한 필력과 내공이 대단하다 느껴지면서도 서툰 생동감을 찾을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서툰 생동감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신선한 소재와 열정을 쏟아부어 단기간에 써내려간 소설과 달리 오래 읽고 쓴 작가들이었다. 작품에 대해 잘 모르지만 독자로서 여느 소설과 비슷하게 일정 수준에 올라있으며 어긋나거나 삐뚤한 구석 없이 반듯한 느낌을 준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시에 대해서는 말을 '무척' 아낀다. 시를 잘 모르고 제대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문학에서는 소설을 주로 읽기 때문에 소설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파킨슨병에 걸린 노모의 간병인이자 요양보호사인 여성을 그린 송지영의 소설 〈마땅하고 옳은 일〉은 현실과 죄의식을 양쪽에 놓고 어느 쪽으로 돌봄의 무게가 기우는지 지켜보는 소설이다. 신부에게 하는 고해성사에서 밝혀지는 진실의 한마디를 통해 독자는 무게의 경중을 가늠할 수 있으며 그 순간이 오면 어쩌면 나도, 라는 식의 공감까지 할 수도 있다. 삶을 견딜 만한 쪽으로 만들기 위해 거짓을 섞어 글을 써온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성수진의 소설 〈재채기〉는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거짓을 섞어도 자신의 담겨있는 글은 자신의 글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너무 좋았는데 사실과 진실을 뒤섞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거짓을 섞어서 기록한 글은 어쩐지 오랜 시간 짓눌린 삶을 조금씩 떼어가서 조금은 가볍게 해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가 들기도 했다. 어쩌면 가장 신인 작가의 작품 같았던 내게는 가장 좋았던 소설. 그리고 연인이 키우던 고양이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반료묘 장례식장에 가던 중 공유 차량츼 타이어가 펑트나서 수리 기사를 기다리는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 정회웅의 소설 〈기다리는 마음〉은 가장 안정감있으면서 단편소설의 묘미가 반짝이는 소설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개되는 소설의 장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글을 쓰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고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하게 된다. 내 안에서 준비된 질문은 아직도 없으니, "고요한 무대를 밝히는 첫번째 대사"인 이 작품들을 다시 읽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