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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의 바다님의 서재
  • 클림트를 해부하다
  • 유임주
  • 18,000원 (10%1,000)
  • 2024-01-16
  • : 1,299

  시대에 따라 예술의 기법이나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존재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탐구라는 주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가 관객에게 전달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내가 처음 봤던 클림트의 작품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알려진 <키스>와 <유디트>였다. 두 작품 모두 눈부신 황금빛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관객을 압도하는 측면이 있었다. <키스>는 찬란하게 피어나는 황금빛 배경에서 키스를 하는 연인들을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와 달리 얼굴에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여자는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묘사되었다.


본래 클림트가 처음 붙인 제목은 <연인>이었는데,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이 키스를 하는 연인들의 황홀경에 흘려 <키스>라고 불렀다고 할 정도로 작품의 초점은 여자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유디트> 역시 황금빛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키스>와는 다른 온도의 황금빛이다. 거기에 눈을 내리깔고 정면을 응시하는 유디트의 모습은 낯설고 불편하다. 유디트 뿐 아리나 클림트의 작품을 볼 때면 그런 느낌이 자주 들었다. 낯설고 불편한, 그리고 과시적인.


내게 예술작품은 스치듯 감상하는 것이었지 자세히 보고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낯설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멈춰서 그 의도를 보고 읽어나가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클림트의 작품도 그런 작품에 속했다. 클림트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작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빈 대학교의 천장화를 그린 후 "검열은 끝났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거둬들였던 일화는 기존 질서가 부여하는 검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클림트가 활동하던 시기의 오스트리아 빈은 합스부르크 제국이 몰락하고 입헌국가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국가는 쇠락하고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문화와 학술의 꽃은 만개했다. 클림트는 이러한 시기에 기존의 질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는 '인간과 과학'에 매혹되어, 이를 평생의 테마로 삼았다. 특히 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주된 테마로 삼았는데, 그 테마에 사로잡혔던 배경에는 ‘빈 모더니즘’을 견인했던 오스트리아 빈의 살롱·카페 문화와 현미경의 발달로 촉발된 '과학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


클림트는 주커칸들 교수와의 교류로 쌓은 높은 생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그림에 정자와 난자, 착상, 임신, 세포분열을 상징하는 요소를 빼곡히 새겨 넣었다. 이 책의 저자는 〈키스〉에서 시작해 〈죽음과 삶〉에 이르는 클림트의 모든 작품은 인간이 태어나 죽음으로 향해가는 과정을 발생학과 진화론적 관점에 기반해 그린 ‘연작 시리즈’라고 소개하고 있다.


처음 언급했던 <키스>를 그런 관점에서 분석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키스>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을 확디해서 살펴보면 남성성과 정자, 여성성과 난자, 수정과 수정 후 발달과정, 혈액세포까지 그려져있다. 저자의 확대 해석이 아닌가 싶지만, 저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기존 학회에서도 발표되었으며 현매경으로 확대해서 확인한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다.

 

<키스> 그림을 확대해서 살펴보자. 남성성을 상징하는 부분은 남자의 옷에 표현되어 있다. 클림트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을 남성의 성기 모양의 상징으로 써왔다. 따라서 남자 옷에 표시된 검은 직사각형이 남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다음에 설명할 <다나에>의 그림을 보면 동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클림트는 정자의 형태를 스타일리시한 도식으로 표현하였다. 여자의 옷을 살펴보면 도라지꽃 같은 다각형이 많이 관찰된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다각형에 물결치는 듯한 꼬리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되는 200~400배 확대된 정자의 모습이다. 이미 19세기에는 광확 현미경 기술이 충분히 발달되어, 이 정도의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클림트를 해부하다 p156

 

현매경으로 확대해서 본 작품에 이런 코드들이 숨겨있다고 한다.

 

<키스>에서 여자의 옷에는 난자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황금색을 배경으로 파란색 경계가 그려지고 속은 노란색으로 채워진 원들이 많이 보인다. 이것이 난자의 형태이다. 마치 계란을 깨었을 때 보게 되는 형태와 유사하다.

클림트를 해부하다 p160

 

클림트의 작품들이 지닌 공통점은 인간의 삶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주된 테마로 삼았는데, 특히 <철학>과 <의학> 속 나신의 군상은 그의 생각이 명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벌거벗은 진실>과 <베토벤 프리즈>는 어머니의 자궁을 중요한 그림의 무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키스>에서도 남녀의 키스 장면과 배경 사이에 실루엣이 보이는데 전체를 연결하면 자궁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을 원한다면 해부학적 측면에서 작품을 읽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화가와 해부학자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 공감되어 옮겨적었다. "잘 살피고 분석한다"는 구절은 화가와 해부학자에게만 필요한 점이 아닌 것 같아서. 잘 살피고 분석하는 노력이 있어야 누군가의 세상이 아니라 내가 믿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화가와 해부학자의 공통점은 둘 다 형태를 습관적으로 잘 살피고 분석한다는 점이다. 화가들은 한번 본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았다가 그들의 작품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옮겨놓고, 해부학자는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연결하려고 노력한다.

클림트를 해부하다 p173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클림트를 비롯한 당시의 예술가들을 과학에 매료시킨 시대·문화적 배경, 2부에서는 〈키스〉, 〈다나에〉 등 클림트의 작품 속 인간 발달을 상징하는 도상들에 대한 분석. 3부에서는 클림트처럼 과학에서 예술의 영감을 얻었던 프리다 칼로, 에곤 실레, 에드바르 뭉크 등의 작품을 살펴본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과학이 있고 그 시대의 예술이 있을 것이다. 클림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고 새로운 바이러스가 끝없이 출연하고 가장 발달된 기술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자의 섬에서 고립된 사람들로 가득한-를 본다면 작품 속에 어떤 비밀 코드를 숨겨놓을 것인지 궁금해졌다.



-한겨레출판사 서평단 하니포터8기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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