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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도서실의바다  2023/12/14 23:14
  • 스타벅스 일기
  • 권남희
  • 15,300원 (10%850)
  • 2023-11-30
  • : 9,377

50대 중반에 시작된 독거 생활로 인해 작가의 스타벅스 일기가 탄생했다.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딸 정하가 독립한 다음 혼자 집에 남게 된 작가는 '절망의 늪에 빠진 기분'을 느꼈다. 만사 무기력하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고 식욕도 없는 등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고, 현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게 되는 철저한 집순이가 되었다. 게다가 일은 쌓이는데 마감이 가까운 글도 써지지 않는 이른바 '빈둥지증후군'이었다. 다행히 더 늦기 전에 작가는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를 찾았고, 그때부터 스타벅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매장 직원이나 주변 손님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자유롭고, 오픈된 장소여서 혼자 있는 방종을 막아주어 공부나 작업이 능률적이었다.

나는 나무늘보보다 움직임이 적은 인간이었는데, 스타벅스에 다니는 덕분에 매일 최소한 왕복 2킬로미터 이상 걷게 됐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빈둥지증후군도 낫고 일석삼조.

나의 스타벅스 일기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스타벅스 일기

이 책은 작가가 스타벅스에 출근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담았다. 계절별로 따뜻하고 재미있고 아차했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나도 동네 스타벅스의 풍경과 그곳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리 동네에는 두 개의 스타벅스가 있다. 이름은 같지만 인테리어와 분위기,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나 직원들의 성향이나 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집에서 좀 더 떨어진 스타벅스는 넓은 내부에 음악소리가 크고 직원들의 목소리가 메뉴얼에 따른 것처럼 균일하다. 그리고 젊은 카공족이 많다. 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스타벅스는 규모가 넓지 않고 음악소리도 작고 직원들은 동네 카페처럼 친근하다. 이곳은 카공족보다는 수다족이 많은 편이다.

나는 스타벅스를 출퇴근하듯 간 적이 없지만 만약 그렇게 자주 갔더라도 작가처럼 스타벅스 일기를 쓸 생각은 못했을 것 같다. 늘 글을 읽고 다듬고 만지는 사람은 주변 풍경도 글처럼 읽고 다듬고 만지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작가는 옆 테이블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스벅 베이비시터’를 자처하기도 하고, 당근마켓 게시판에서 이어폰을 잃어버린 사람의 호소를 보고 일면식 없는 사람의 물건을 찾아주러 매장 앞 버스 정류장으로 출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출한 딸을 찾아 스타벅스에 왔다가 무시만 당하고 돌아선 옆자리 중년 여성을 안타깝게 보다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엄마로서의 동병상련을 나누기 하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구절을 떠올리며 스타벅스 별 모으기도 한다.

작가의 직업이 번역가인지라 스타벅스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겪는 와중에 일을 하는 장면들도 곳곳에 나온다. 작가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일본 소설을 스타벅스에서 번역하고 있는 장면이 재미있었는데 그 이유는 번역 내용과 주변 사람들의 수다에 섞인 내용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말해보자. 작가가 번역한 페이지에는 취준생이 된 주인공 커플은 버스를 타는 대신 스타벅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마시며 집까지 걸어가는게 큰 즐거움인데 부모님의 생활비 지원이 끊기자 스타벅스 커피는 편의점 커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 의기소침했지만 드디어 취업에 성공하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귀가한다. 그러면서 남자는 "나의 목표는 너와의 현상유지야"라고 늘 말했지만 꽃다발을 현상 유지하지 하기는 어려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작가가 오랜만에 이런 연애소설을 번역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여성들이 누구네 남편 바람피운다는 내용의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작가는 꽃다발 같은 사랑을 번역했지만 중년 여성들의 "꽃다발 같은 사랑은 결국 만지자마자 바스러지는 드라이플라워의 말로를 맞이한 것"이라는 시선 변화라는 웃픈 결말로 나아간다.

겨울에서 시작되어 가을에 마무리한 이 일기장에는 익숙한 스타벅스 메뉴와 함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느슨하면서 따뜻한 관계가 그려져있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이 책을 읽으면 미소가 살포시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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