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헨리 제임스”
이름은 알고 있지만 아직 그의 글은 읽지 못했다. 그가 어느 국가와 시대에 살았고 어떤 글을 썼으며, 그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이런 상태에서 프롤로그를 읽으니 그의 삶과 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영국 문학의 전통에 속해있으며 파리를 꿈꿨지만 런던에 정착했고 그럼에도 가장 사랑한 땅은 이탈리아였다고 한다. 굉장히 복합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희귀한 떠돌이였다고 한다. 그의 삶이 반영된 것이다. 글. 특히 문학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가의 삶의 녹아있다. 작가가 아무리 숨기려 노력해도 결코 지울 수 없다.
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그는 어디서든 이방인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좋아하거나 칭찬하지 않았고 ‘난해하다’ ‘현학적이다’ 등의 악평을 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와 형이 그의 글을 폄하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괴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글쓰기를 지속한 이유는 문학의 궁극적 관대함과 자유를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영문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작가가 되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법. 그가 어떤 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 02. 뉴욕.(New York)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예민하고 방랑자 기질 덕분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정했지만 본질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성이 높았던 그는 강인한 아내에게 삶의 모든 것을 의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헨리 제임스는 모든 일을 초연하게 처리하는 어머니에게 존경과 애정보다 공포를 느꼈다. “혹시 강인한 어머니가 허약한 아버지를 집어삼켜 버린 것은 아닐까?” “어머니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공포를 말이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인간 사이의 권력 투쟁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요소는 그의 삶과 소설에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또한 주류 가정의 아버지들과 달랐던 그의 아버지는 당시 미국 주류의 생활방식, 문화, 교육을 멀리하였고 아이들에게도 주류의 문화, 교육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교육방식에는 방향성과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자식들은 모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나마 헨리 제임스만이 작가로서 삶을 이어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러한 환경은 제임스에게 죽을 때까지 이어나간 ‘고뇌’라는 선물이자 저주를 물려주었다.
그렇게 성장한 그의 눈에 미국은 소박하기보단 황폐했고 공장과 사업가들의 세계, 터프하면서도 한심한 댄스파티에 참여하는 여자들만 가득한 세상이었다. 유럽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국가였다. 그리고 본인은 발자크, 조르주 상드 같은 유럽의 작가들과 대결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고 큰 꿈을 꾸고 있는데 주변의 미국인 작가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소심한 족속들로 보였다. 결국 그는 유럽으로 떠난다.
그의 바람대로 다양한 명사들을 만나며 행복한 삶을 살지만 그가 몹시 아꼈던 사촌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져 미국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끝없이 방황과 고뇌를 하지만 문학을 놓지 않고 작품을 출간한다. 그렇게 맨해튼에 정착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작품에는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전형적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싶어 발버둥 치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한마디로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불완전한 존재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연스럽지 못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미국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본인이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삶에 놀아나는 바보 같은 여성들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랬다면 그가 지금까지 영향력 있는 작가로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서 그의 글을 읽어보고 직접 판단하고 싶다.
저자는 미국과 뉴욕의 부정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그런 그의 주장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마천루,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센트럴 파크, 그곳이 가진 상징성, 다양한 인종들의 욕망이 뒤섞여 분출되는 특유의 분위기 등 여전히 뉴욕은 나에게 선망의 도시이다.
# 03. 파리.(Paris)
파리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두근거렸다. 그가 플로베르의 문학 모임 세나클에 참여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플로베르, 에밀 졸라, 알퐁소 도데, 모파상을 만났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을 직접 만난 것이다. 부럽다. 하지만 그는 이 모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세나클은 다른 계파를 모조리 혐오하는 아주 작은 문학 계파이다. 하지만 계파의 내부는 정력적이고 부지런하며, 편협하지만 완벽한 생산품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생산력으로 가득 차있다.”(p.67)
그는 그들의 오만하고 편협한 세계관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특유의 독한 매력을 거부하지 못했다. “특유의 독한 매력.” 정말 공감한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특히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완벽하면서도 독보적이라고 생각했지만 플로베르의 천재성을 굉장히 야박하다고 평가한다.
나 또한 제임스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 식으로 엠마를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했을까? 하지만 플로베르와 그의 추종자들은 엠마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단어들의 운율 등 뛰어난 문장에 대한 관심뿐이었다.
환상이란 한순간 사라지는 법. 결국 그는 파리라는 도시에 속하지 못한 채 다시 새로운 도시로 떠난다.
# 04. 런던(London)
그가 살았던 시대의 런던은 세계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파리와 달리 부와 가난이 함께 존재했고 세계 곳곳에서 흘러들어온 기술, 문화가 혼재했다. 그는 이런 런던에 만족해하면서도 거대하고 대단한 이 도시가 머지않아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다시는 최고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런던의 어떤 면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을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그의 눈에 특별히 보이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런던에 매력을 느꼈고 파리와 다르게 런던의 상류사회에 정착한 뒤 오랜 시간 삶을 이어간다.
# 05. 글을 마무리하며.
그는 세상의 어두운 면도 파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강인하고 유능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모든 것을 실패한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제한이 있던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 보면 이런 부분을 글로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침없이 글을 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 진정한 작가였다.
또한 그는 소설이 아닌 희곡을 쓰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한다. 그는 실패를 인정한 뒤 영원히 연극계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후기 3부작에서 우아하지만 차갑고 냉혹함이 느껴지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 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다.
한편 여성에 대한 그의 태도와 감정도 기억에 남았다. 그는 강인하고 유능한 여성들을 동경하고 아끼면서도 그녀들이 자신을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며 여성을 멀리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여성에 대해 양가감정은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그의 삶은 피곤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드가'가 떠올랐다. 그 역시 여성에 대한 그림을 많이 남겼지만 여성 혐오 자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여성을 멀리했다. 드가 또한 여성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졌던 것일까?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젊은이들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마음껏 즐기세요. 나는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것(문학)을 손에 넣고, 극한까지 탐험하세요. 드러내고, 한껏 기뻐하세요. 삶 전체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을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오직 그들이 가리키는 곳에만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세요. (중략) 긍정주의 혹은 비관주의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삶 그 자체의 색깔을 포착하기 위해 힘쓰세요. <소설의 기교> 헨리 제임스."(p.186-187)
"삶 그 자체의 색깔을 포착하기 위해 힘쓰세요."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헨리 제임스' 또한 훌륭한 가이드와 함께 예술가의 삶과 관련된 도시를 여행한 기분이다. 평범한 여행이 아닌 예술가의 삶을 느끼고 알아가는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좋은 책을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