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기는 비록 다양하지만, 각자의 도시에서 삶을 살아간다.
도시와 도시를 경계 짓는 곳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다른 동네들 역시 벽이 존재한다.
심지어 나의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벽은 존재한다.
그 벽은 보이지 않지만, 마치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처럼 기능하고, 존재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어느 소설가의 책 제목처럼 도시에서 불확실한 벽들로 둘러싸인 존재인 셈이다.
벽은 벽의 기능을 해야만 존재의 가치가 있다.
벽이 제대로 안과 밖을 경계 짓지 못하거나, 허물어지면 벽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진다.
그 벽은 무너뜨려도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벽은 구분 짓고, 구획하고, 분리시키며, 필요에 따라 격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벽은 감정이 없어야 한다. 감정이 개입하기 전에 먼저 행동을 해야 한다.
벽은 민첩해야 한다. 다른 이들이 우유부단할 때, 신속하게 결론지어야 한다.
인간에게 벽은 필요악인 셈이다.
최정원 작가의 신작 『허밍』에서 벽은 이야기의 뼈대이자, 주요 메시지이다.
벽은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을 구분 짓고, 감염된 자와 감염되지 않은 자를 분리 시킨다.
벽은 서로 다른 이들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함으로써 감각을 격리시킨다.
보고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란 건 없다. 그들을 '통해'내릴 결정만 있을 뿐.
그래서 여운의 선택은 눈에 띈다. 유일하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사람이고,
벽을 벽인 채로 보지 않는 행동을 보인 사람이니까.
그의 선택에 힐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벽을 신봉하는 신뢰에 금이 가는 행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시스템이란 결국 벽을 지키는 것이니 말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벽 안과 밖에서 삶을 살아간다. 벽은 결국 무너지지 않았다.
벽은 필요악이라는 간단한 요약에서 방점은 뒤가 아니라 앞이다.
언젠가 우리에게 더 이상 벽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들 스스로 그 벽을 깨부술 수 있을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노의 소방 도끼도 아니고, 좌절의 권총도 아니다.
거기서 잘 있었냐는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작은 구멍일지도 모른다.
*창비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