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dlalstjd7701님의 서재
  • 열세 살의 여름
  • 이윤희
  • 22,500원 (10%1,250)
  • 2019-07-19
  • : 2,426

내게 열세 살은 축구와 동방신기와 NRG와 <풀하우스>와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시리즈가 전부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재밌게 본 것도 있지만, 내 기억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반지의 제왕> 캐릭터 중에 하나인 김리라는 난쟁이 때문이다. 『열세 살의 여름』 속 우진이처럼, 열세 살의 나도 같은 반 친구를 좋아했었고, 그 친구에게 김리라는 별명을 붙이며 놀렸었다. 이유는 단지, 그 친구 머리가 붉은색이고 키가 나보다 작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놀림당하는 친구의 대부분이 그럴 것인데, 놀림의 리액션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김리도 그랬다. 사소한 장난에 화들짝 놀래고, 늘 웃으면서 내게 반격하고, 무엇보다도 대화 코드가 나와 잘 맞았었다.

비가 오지 않아야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 애들은 비 오는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비 맞으면서 축구하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비 오는 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 수위 아저씨에게 엄청 혼났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비가 와서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도 내심 좋았었다. 그날은 김리랑 김리 친구들이랑 같이 수다를 떠는 날이었으니까. 김리는 동방신기 멤버 중에 영웅재중을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반복되는 나의 놀림 레퍼토리 중 하나가 바로 영웅재중이 뭐가 잘생겼냐는 것이었다(제가 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을까요. 카시오페아 여러분들, 죄송합니다). 그러면 김리는 대번에 화를 내며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김리의 화난 표정이 재밌었고, 이내 내가 놀리고 있는 걸 알고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 가는 김리의 성격이 좋았다.

1년 내내 그렇게 재밌게 지냈으면 참 좋은 추억만이 남았을 텐데, 어리석게도 나는 2학기 학예회 연습하던 날, 사고를 쳤다. 당시에 나는 난타를 연습 중이었는데, 연습실이 1층에 있었다.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 전에 미리 모여 난타를 한참 연습하고 있었는데, 남자 애들끼리 있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자존심 싸움이 발동되었다. 내가 김리를 좋아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밝히자,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고백을 안 하면, 남자도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몰았다. 어리석은데, 자존심만 셌던 당시의 나는 연습실 창문을 열고, 아침 조회를 위해 운동장에 모이는 학생들 중에서(아마도 전교생이 모이는 것 같았는데) 김리를 발견하고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000, 사랑한다고!"

그 이후에 벌어진 무안하고 민망하고 어색한 상황은 상상에 맡기겠다. 그 후로 졸업식까지 김리와는 말도 안 하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게 김리와의 마지막이었다.

만화책을 읽고 나서 감상평을 써야 하는데, 나의 재미없는 추억을 주저리주저리 떠든 이유는 뭘까. 왜 책을 읽고 나서 책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걸까. 주책맞게 벌써 나이가 먹은 걸까. 그래, 그때 그랬지. 참, 좋은 시절이었어, 뭐 이런 거? 아니, 그렇다기보다 『열세 살의 여름』 이 독자에게 주는 묘한 기운이 있는 것 같다. 새로 나온 영화가 있는지, 다음 만화책이 반납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들락거리던 비디오 가게와 피아노는 여자만 치는 거라고 생각하며 배우지는 않았지만 친구를 기다린다고 갔었던 피아노 학원과 이상한 것들이 잔뜩 들어 있던 책상 서랍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우리에게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해원이나 산호처럼 열세 살의 여름 방학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우리 집은 가게를 했으니까 어디 놀러 가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그 더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냈을까. 그래서 해원이와 산호가 부럽다. 열세 살만 할 수 있는 사랑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열세 살의 여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부질없는 말일 테지만, 나의 열세 살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그토록 싫었던 일기를 아주 꼼꼼히 쓰고 싶다. 날씨는 당연하고, 무얼 먹었고, 엄마 기분은 어땠는지, 아빠는 몇 시에 가게를 나갔는지, 동생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는지, 어떤 친구를 좋아했는지를 모두 기록하고 싶다. 단지 그거면 된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의 내가, 열세 살의 나에게 묻고 싶다. "그곳의 여름은 안녕하신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마음속을 괴롭히는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마. 그 마음하고 막 싸우고 왜 그런지 물어보고 따져 보고. 그래야 네가 거기서 배우게 될 거야."- P340
중학교에 올라가면 다들 헤어지게 되겠지?- P357
그날은 내가 피아노 학원을 마지막으로 간 날. 그리고 산호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P447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