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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alstjd7701님의 서재
  • 진보와 빈곤
  • 헨리 조지
  • 19,800원 (10%1,100)
  • 2019-05-23
  • : 3,716

영화 <그래비티> 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는 우주에 홀로 남게 되자,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집이 있는 지구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아무것도 밟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다니는 유영이 아닌, 중심을 잡고 두 발을 땅에 내딛게 하는 중력이 그리웠다. 영화 엔딩에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한 발짝 씩 앞으로 걸어가는 라이언의 모습에 우리가 울컥하는 이유는 어쩌면 중력 속의 삶에서 상처를 겪지만 성장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아서가 아닐까.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중력을 매개하는 물리적 실체는 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는 땅을 토지라 한다. 토지는 농부에게, 부동산 중개인에게, 건물주에게, 평범한 우리들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토지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수렵 생활과 농경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살며 배달 앱으로 밥을 먹더라도 그러하다. 토지는 쌀을 만들어 내는 터전이고, 도시 속 집을 지지하는 기반이며, 와이파이로 앱을 연결하게 하는 전산망을 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기술보다 한참 뒤처져 있던 19세기 후반에 헨리 조지는 토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당시의 주요 산업은 대규모 농업과 단순 제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의 분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거칠게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인류의 경제 구조는 크게 '토지-노동-자본'의 구조로 이뤄져 있고, 토지는 지대로, 노동은 임금으로, 자본은 이자로 이윤을 획득한다. 그런데 인류 문명이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지대가 모든 이윤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토지 보유세라는 단일 세로 지대의 독점을 막고, 징수한 세금으로 공공복지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토지의 가치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은 사회가 형성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치이고, 다른 가치들과는 다르게 사회의 성장과 함께 토지의 가치는 성장한다. 그것은 사회가 존재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대규모 사회의 구성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해보라. 그러면 현재 그처럼 가치 높은 토지도 전혀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인구가 증가할 때마다 토지 가치는 높아진다. 인구가 줄어들면 따라서 내려간다. 이것은 토지의 소유권처럼 그 성격이 독점인 물건에만 해당하는 얘기이다.

제8권 3장 <조세 정의의 기준으로 검증해본 토지 가치세>

서울 강남의 땅값이 올라 경제적 가치가 상승한 것이 땅 주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인가? 그것은 서울시, 강남구, 강남구 일대의 기업들, 기업에 속한 개인들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 사회 전체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현대 사회의 인간이 이룩한 부는 온전히 한 개인만의 능력으로는 불가하다고 말한다. 사회 속 공공재가 알게 모르게 각 개인의 삶을 지탱하고,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며, 기술이 진보하는 데 힘을 써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공공재를 무시하며 모든 이윤을 독점한 지대는 이제 공공재에게 다시 그 이윤을 돌려 줄 의무가 있다.

여기에 진보의 법칙이 있다. 그것은 모든 다양성, 모든 진보, 모든 정체, 모든 퇴보를 설명해줄 것이다. 인간은 항상 가깝게 어울릴수록 진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서로 협동함으로써 사회 개선에 바쳐지는 정신력을 향상시킨다. 그러나 갈등이 유발되거나 모임이 불평등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발전의 경향은 감소되고 견제되어 마침내 퇴보하게 된다.

… 인간은 그 본성상 사회적 동물이다. 그를 동료 인간들과 함께 살도록 하기 위해 그를 붙잡아다가 길들일 필요가 없다. 그는 무기력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고 신체적 능력이 성숙될 때까지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그는 가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가족 관계는 현대의 교양인들 사이에서보다는 과거의 원시적 부족들 사이에서 더 넓게 더 단단하게 퍼져 있다. 인간의 최초 사회는 가족이었고, 이것이 상호 혈통 관계를 여전히 유지한 채로 부족으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심지어 커다란 민족을 형성했을 때에도 공통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10권 3장 <인류 진보의 법칙>

조지는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반대한다. 인간은 남보다 더 이득을 얻기 위해 모든 정신력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빈곤에 삶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그 구조 위에서 개인은 내 발끝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주변의 개인들을 둘러볼 수 있는 시야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모여 좋은 세상을 만들고, 좋은 세상이 다시금 좋은 사람들을 낳는 무한한 선순환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 인간의 독보적인 능력이라고 조지는 믿는다.

개인적으로 제9권 4장 <사회 조직과 사회생활에 벌어질 변화>가 조지의 주장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조지가 바라는 것은 공산주의식 기계적 평등이 아니다. 조지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빈곤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부재한 세상이다. 그는 빈곤의 불안이 없으면 탐욕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며 과감하게 한 발 더 나아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눈여겨보고 있는 사회적 신뢰가 아닐까. 나는 조지가 '월 300'으로 소확행을 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희망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월 300'이 유토피아가 되었나.


금세기(19세기)의 특징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 엄청난 부의 생산 능력을 들어야 할 것이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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