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휴식기에 맨발걷기를 꾸준히 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때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블로그, 블로그 주인장은 숲해설가 공부 중이셨다. (나도 지난겨울 숲해설 공부 중이었고) 살펴보니 그림책 활동가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신 작가이기도 하였다. 이후로 그림책, 맨발걷기, 숲해설 등의 공통 관심사로 소통하는 블로그 이웃이 되었다. 얼마 전, 이웃님의 따끈한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첫 북토크도 신청하여 기다리는 중이다.
마치 바람결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보랏빛 나뭇잎과 키 작은 붉은토끼풀, <산책자와 400년 느티나무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담긴 표지에서부터 마음이 끌렸다. 그림책과 일반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 품고 산책하며 사색한 결과물인 <붉은토끼풀이 내게로 왔다>는 여는 글부터 맺는 글까지 필사하며 마음에 새기고 싶은 글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붉은토끼풀이 내게로 왔다>는 새롭고 산뜻하다. 막연히 걷다가 우연히 자연을 만나 위로를 받는 산책이 아니다. 저자는 이제껏 만난 그림책과 다양한 책 속 인생 문장을 들고 길을 나서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어르신 느티나무와의 대화를 한다. 내게는 이 행위가 몹시 신선했다. <문장들이 몸과 마음에 무늬가 되어버릴 정도로 씹고 삼키자는 다짐-6쪽>으로 삶을 도전적이며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저자의 태도에 감동했다.
<1장. 받아들이다>는 스스로를 바라보고 진정으로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게 하였고 <2장. 품다>는 순간에 집중하는 삶과 그럼으로써 뿌리 깊은 나무가 되는 삶을 품게 하였고 <3장. 넘어서다>는 진정한 자유를 통한 넘어섬은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네.
내 가지들을 보게나. 햇볕이 많이 닿는 곳은
더 빨리 잎이 나오고,
그렇지 않은 곳은 아직 나오지 않는 곳도 있다네.
지금 이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 해도
그게 전부 나일세.
나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사랑한다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것까지도 받아들인다네.
그저 묵묵히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가장 나다움을 만들어가지.
붉은토끼풀이 내게로 왔다. 31쪽
그림책 <나는 고양이라고!>의 정체성 확실한 고양이와 그 어떤 자신도 품는 어르신 느티나무와 저자의 상징적인 묘비명 < 자기다움을 찾은 사람>은 깊은 호흡으로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게 하였다. 한걸음에 성장하고자 서두르는 마음도 있고, 늘 부족한 나를 품어주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고, 도대체 나를 잘 모르겠던 시간들이 있지. 나를 다시금 돌아보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더디지만 나아가고 있음을 알아채어 가는 중이다. 어르신 느티나무의 음성이 들리는 듯 가까이 다가와 나를 찾아가는 길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문장이 되어 주었다.
"... 오늘 저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가 그린 화사한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그림을 가져왔어요.
그리고 뒤에다 이번 봄에 초대하고 싶은 단어들을 써 가지고 왔어요.
바로 '바람, 맨발걷기, 1일 1클래식 그리고 결단'입니다.
올봄 저와 친구가 될 단어들이에요.
저는 이것들을 온몸으로
맞을 거예요."
붉은토끼풀이 내게로 왔다. 114쪽
저자와 어르신 느티나무와의 대화 중 유독 생생하게 와닿는 부분이다. 봄 친구가 될 단어를 온몸으로 맞이한다는 저자의 말속에서 해맑은 저자의 표정이 그려져 나 또한 봄처럼 신이 났다. 이 시린 겨울,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추위를 온몸으로 맞이할, 함께 할 나만의 단어들을 떠올려 보았다. <새바라기, 만보 걷기, 1일 1기록, 결단> 추상적인 단어인 결단은 저자를 따라 하게 된 다짐이다. 내년을 준비하는 휴식기인 요즘 앞으로 다가올 결단의 순간들을 예감하고 있다. 저자의 봄맞이 결단처럼, 나의 겨울맞이 결단에도 단호함 뒤 평화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상록오색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붉은토끼풀에게 다가간 것은 단순히 꽃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를 감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이 열리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심하게 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은 내게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획일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체계를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뇌리를 때렸으니 말이다.
붉은토끼풀이 내게로 왔다.88쪽
<붉은토끼풀이 내게로 왔다> 제목에는 저자의 잣대로 단정 짓는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인생의 문장을 들고 길을 나서고, 어르신 느티나무와의 대화를 통한 성장과 성숙에 이르는 저자의 태도는 나의 고정된 틀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행위이다. 그러니 <붉은토끼풀이 내게로 왔다>는 내게는 저자의 <붉은토끼풀>과 같은 존재와 다름없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품고 가는 길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자극이 되었다. 그 자극은 분명 나만의 실행을 하게 이끌 것이고 나를 넘어서는 성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우선, 저자를 따라 해보려 한다. 내게는 새로운 자연놀이, 성장 놀이가 되어줄 듯싶다. 필요한 질문을 담아 산책을 나서야겠다. 앗! 어르신 느티나무와 같은 든든한 존재감 있는 자연을 발견하는 것이 먼저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