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 1, 1~3)"
신앙인인 우리가 믿어야 할 세 가지의 규범이 있다. 가톨릭은 계시종교이며, 선민사상을 믿고, 삼위일체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다. 신앙인의 목표는 행위나 결과에 상관없는 믿음을 따라, 절대적인 선의 목소리로 하여금, 말씀이시자 계시되신 하느님의 거룩한 가르침에 눈을 떠야 한다. 신앙인의 삶은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정언명령에 따라, 교회의 율법을 지키면서, 스승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늘 신앙을 고백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발타사르의 책에서 말하는 커다란 맥락은 하느님의 사랑인 '로고스'에 대한 설명으로,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믿을 만한 것으로 세상에 제시하기 위해서, 육화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면서 계시를 사랑의 척도로 동정녀이자, 교회의 신부인 성모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으로 내려오셨음을 서술해 주었다. 교회는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거룩한 성령이 머무시는 성전으로, 흠 없는 교회를 지키면서, 보호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신부라고 칭한다.
책에서는 "사랑의 본래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에 있음으로, 우리가 살면서 만난 모든 것들에게 죄를 지었으며, 죄를 깨달으면서 자기 객관적인 통회로 하여금 신의 존재를 믿는 과정의 거룩한 여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성령의 증거인 거룩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로고스를 만나면서 내적 치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는 사랑의 형상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이성과 감정들이 인간 세상의 한 형태로 주목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숨을 잇게 하는 식량에 감사함과 이웃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자비함에 신의 존재를 실감하고 감사해야 한다.
이웃과 주고받는 사랑은 한시적이므로 근심이 따르지만, 그리스도인 삶의 여정에는 역경을 기꺼이 삼는 호기가 필요하다. 또 신앙인은 몸소 신앙을 해명하는 인간 중심적 태도를 가져야 하며, 끈기 있게 기도해야 바람직하겠다. 발사타르는 "찬란한 영광으로 자신을 해석하는 방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체라고 말했다. 성경 속에는 세계 종교에서 통합적으로 말한 것들과 차별이 있을 것이다. 사랑은 철학과 심리학, 정신학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말씀은 교사들과 주석가도 풀기 힘든 미학이므로, 단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 죄인이란 계시를 들어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개인의 객관적 해석으로 신앙생활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이라고 감지되는 거룩한 이끄심을 따라서 이 땅을 덕으로 걸어가야 바람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