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힘은 제가 가진 행복에서 나오고, 의욕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와요. 저는 이곳에서 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의 희망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기쁜 일이죠. 하지만 제가하는 행동은 대부분 그저 내가 행복하기 위함이에요. 다른 사람의 희망이되기 위해 평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처음만든
꿈도 마찬가지예요. 그 꿈은 해안에서 멀어지는 범고래의 시점 으로 진행돼요. 그건 저 자신을 나타낸거 였어요. 제가 살아가기
에 너무나 제약이 많은 이세상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아니라, 두 다리를 아예 쓰지 않아도 더 큰 세상을
보는 범고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바다에 빠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그 아래에 더큰 세상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참 다행이다 싶어요. 만약 내가 해안을 달릴 수 있는 사람
이었다면, 굳이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 P102
"우린 살면서 한 번도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적이 없어요.
그 사람이 나를 보는 표정, 목소리 같은 정보로 그저 추측할
뿐이죠.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진실을 가릴 때가 있잖아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처럼요. 어차피 알 수 없다면,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의 얼굴을 상상해보세요. 우리도 지금 그렇게 당신을 보고 있어요."
- P103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가 제
모든 다른 면들을 가릴 만큼 크고 빠르게 번지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저는… 전 그냥 앞을못 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박태경이에요."
남자는 언젠가 한 번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고싶었던 말을 용기 내 입 밖으로 꺼냈다.
"나도 그랬어요. 나는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았어요. ‘나는 킥 슬럼버인데, 다리 한쪽이 불편해.‘ 적어도 이 수준까지는 닿길 바랬어요. 그건 아주 큰 차이에요.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바로 당신 같은 사람 말이에요."- P104
"태경 씨, 우리를 나타내는 어떤 수식어도 우리 자신보다 앞에
나올 순 없어요. 그리고 우리 같은 제작자가 있고 꿈을 사러 오는 당신이 있는 한, 아무도 당신에게서 잠자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을 뺏어갈 순 없어요. 당신에게 어떤 꿈을 드릴 수 있을지는 우리
제작자들이 고민할 몫이에요. 당신은 자기 전에 아무걱정 없이
눈을 감고 편안히 있으면 돼요."
와와 슬립랜드가 확신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 P105
-저평가된 아쉬운 꿈-
7년 전 오늘 발매된 야스누즈 오트라의 ‘부모님으로 일주일간
살아보는 꿈‘은 보기 드문 수작이다. 꿈은 제작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꿈꾸는 당사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전개하는가, 아니면 그 바탕부터 제작자의 의도와 생각으로만 채워 한 편의
가상현실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가다. 젊디젊은 야스누즈 오트라
의 패기 넘치는 이 작품은, 놀랍게도 전자다.
기억을 바탕으로 꿈을 만드는 것은 다른 경우에 비해 훨씬 까다
롭다.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의 기억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그
불확실성을 염두에 둔 채 제작자의 의도까지 담기란, 두통이
올 정도로 복잡한 영역이다. 제작자를 꿈꾸는 이들이 수없이
많지만, 막상 제작자 면허를 얻기는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야스누즈 오트라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시점을 비틀어
꿈을 만들었다. 꿈꾸는 당사자의 기억이아니라, 꿈꾸는 당사자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 이라는 타인의 시점을 기반으로 꿈을 전개한다. 획기적인 발상과 과감한 시도 자체가 가히 천재적
이라고 할 만하다.
이 꿈을 최초로 접한 당시 평론가의 감상이 인상적이다.
- P116
페니는 군데군데 메모해 놓은 ‘좋은 꿈의 조건‘을 살폈다.
크리스마스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 선물할 꿈을 고를때는, 아래의 한 가지만 만족해도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1. 다시 봐도 좋은 영화처럼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꿨을 때도
의미가 있을 법한 내용
2. 꿈꾸는 사람 개개인을 위한 맞춤 형태
3.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고 꿈이어야만 경험할수 있는 내용
"시간이 지나고 다시 꿔도 좋고, 개인을 위한 맞춤 형태인 데다
꿈이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꿈이 뭐가있을까요?"
"그걸 다 만족하는 꿈이 있나?"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2층에 있지."
비고 마이어스가 손을 들었다.
"2층의 ‘추억 코너‘에 있는 꿈들이 그 조건을 다 만족해. 추억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봐도 좋고, 사람마다 갖고 있는 추억이 다르니까 당연히 맞춤 형태로 제작될 수밖에 없지. 그리고 지나간 추억을 꿈이 아니면 어디서 경험할 수 있겠어."- P225
언제나 인생은 99.9%의 일상과 0.1%의 낯선 순간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기대되는 일이 없다고 슬퍼하기엔 99.9%의 일상이 너무도 소중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도, 매일 먹는 끼니와매일 보는 얼굴도.
그제야 여자는 내 삶이 다 어디로 갔냐 묻는 것도, 앞으로 살아 갈 기쁨이 무엇인지 묻는 것도 실은 답을 모두 알고 있는 질문 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82
이미 동그랗게 떠버린 해를 보고 허탈하게 한참을 웃고,
다 떠버린 해에다 소원을 빌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대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입시험에서 겪은 실패 앞에서, 19살의 남자가 갖고있던 소원은 아주 뚜렷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껴지게 해주세요."
....
잠에서 깬 남자는 꿈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 빌었던 소원만큼은 기억했다.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걸 지금의 남자는 알고 있었다.
후회 없이 공부한 1년과 좋은 결과가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당시엔 쓰라리게만 느껴졌던 경험들이,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남자의 형태를 다른 사람과 다른 모양으로 잡아나가는
밑 작업이었다. 남자는 부딪혀서 깨지고 갈려 나가더라도 그 밑에 남는 조각이 결국에 어떤 모양으로 완성될지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힘껏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남자에게 필요한 주문은 딱 하나였다.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만들거니까."
- P283
파자마 파티를 다녀간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추억들이 각자의 꿈속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분명 그들의 머릿속에 있었지만,
일부러 꺼내 보지 않으면 곰팡내 나는 책장에 언제까지나 모셔져 있을 법한, 옛날 사진첩 같은 머릿속 한쪽 구석의 기억들이었다.
저런 애랑은 평생 가도 못 친해지겠다고 생각했던 지금 절친과
의 첫 만남의 장면도, 늘 만감이 교차하던 고단한 날들의 퇴근길 풍경도, 사람들은 각자 다른 추억을 마주했지만 공통점이 딱 하나 있었다. 어떤 기억도 추억이 되고 나니 사소한 기쁨과 슬픔 따위는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이 추억은 분명 내 것이 맞는데, 어디에 있다가 어젯밤 꿈에 나에게 다시 돌아온 걸까?"
파티에 다녀간 사람들은 꿈에서 깬 뒤, 오랜만에 지난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 P284
그는 카드 케이스를 뒤집어 바닥 면을 페니에게 보여줬다.
‘지금의 행복에 충실하기 위해 현재를 살고
아직 만나지 못한 행복을 위해 미래를 기대해야 하며,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행복을 위해 과거를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이 테스트 카드는 고유한 성향을 알아보는 도구가 아니야.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손쉽게 확인하는 도구지.
테스트할 때마다 결과가 바뀌는 게 오히려 당연하단다."
달러구트가 케이스에서 카드를 꺼냈다. 완전히 겹쳐 있는 카드는 현재의 조각을 품에 간직한 시간의 신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P289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단다.
세 제자가 세 명의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시절에 따라 변하는 사람의 세 가지 모습이 아닐까 하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내 시간이 오롯이 존재하기에 시간의 신은 나 자신이다.‘ 라고 생각하면 내가 나인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니?"
"와, 정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어요."
페니는 현재와 과거, 미래 모두를 가졌다는 충만함으로
몸이 기분 좋게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손님들도 우리도 전부 마찬가지야.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갈 때가 있고, 과거에 연연하게 될 때가 있고, 앞만 보며 달려나갈 때도 있지. 다들 그런 때가 있는법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기다려야 한단다. 사람들이 지금 당장 꿈을 꾸러 오지 않더라도,
살다 보면 꿈이 필요할 때가 생기기 마련이거든."- P290
"추억을 만든 것은 과거의 손님 ‘본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꿈의 제작자는 손님이지요.
우리는 모두 그 어떤 제작자보다 훌륭한 꿈 제작자예요.
제작하는 사람도 판매하는 사람도 매일을 살아가는 당신 없이는
훌륭한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답니다."
비고가 이렇게 말하면서 꿈 상자를 건네면,
손님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인조 가죽 위에 각인된
자신의 이름을 요리조리 살피면서 가게를 나섰다.
- P293
페니는 일간지 <꿈보다 해몽>에서
‘자신의 생일을 스스로 축하하는 방법‘의 하나로
달러구트꿈 백화점 2층 추억 코너에서
제작자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꿈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이 최신 유행이라는 특집 기사를 발견하기도 했다.
- 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