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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똥이 니 똥이야??


저는 도시내기에요. 그래서 그랬는지...

풀꽃이름, 짐승 이름도 잘 모르고 자랐던 거 같아요.

그래도 동물을 좋아해서 어릴 때는 bbc 방송국의 동물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기도 했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아마존에 있는 나무늘보도 좋아하게 되었고, 한때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건 그냥 생각뿐이었어요. 정작 동네 길에 피는 꽃 이름조차 잘 모르는 한심한 도시내기였으니까요.

길바닥에 짐승 발자국이나 똥을 보면, 죄다 도둑고양이거나 개 발자국이거나 했죠.

하늘을 나는 새도 작으면 참새고, ‘깍깍’ 대면 까치가 날아가나 보다 했어요.

어쩌다 여행을 가서 하얀 새들을 보면 무슨 봉황이라도 본 듯이 신기해했죠.

그래도 내가 모르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어요. 모두 다 모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우연히 우리 나라 야생동물 발자국이 찍힌 손수건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곰 발자국, 너구리 발자국, 고라니 발자국, 산양 발자국 들이 마구 찍혀 있었어요.

조카들이 그 손수건을 보면서 서로 제가 갖겠다고 싸우더라구요. 

손수건을 애들 사이에서 뺏어 들고는 한참을 들여다보았어요.

이게 다 우리 산에 살고 있다고? 어디에 살지? 어딜 가야 볼 수 있지? 이 발자국의 주인공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문득 내 눈에는 왜 이것들이 안 보이는지 답답하기도 했구요. 분명 여기저기 산다는데……. 동물학 박사도 아니고 수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 못 찾지, 못 찾아. 하고 생각하던 중에…….

다른 책을 사려고 여기 들어왔는데 우연히 <동물 흔적 도감>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혹시나 이 책이 내 답답함을 가르쳐 줄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서 냉큼 사 버렸어요.

물론 백수처지여서 금전적인 문제가 뒤따랐으나...

어린이 책이라 ‘옳거니!’하고 언니에게 조카 핑계 삼아 사보자고 했죠.

며칠 뒤에 책을 받아 보았는데……. 오! 정말 놀라웠어요. 이 많은 게 다 우리 나라에 있다니……. 갑자기 숨겨 둔 뭐 어떤 그런 느낌? 바로 여기 다 있었던 거죠.

우리 나라 동물들도 세밀화로 다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짐승 발자국과 똥만 보고 어떤 동물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내 똥을 보고는 나를 찾을 수 없을 텐데 말이에요.^^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ㅋㅋ 하여튼 그 책을 보니까 개 발자국과 너구리 발자국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도 잘 나와 있더군요. 물가에 사는 새들은 물갈퀴가 있어서 다른 새들과 구분 할 수도 있구요.  저는 우리 나라에 쥐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쥐는 죄다 시궁쥐겠거니 했는데 멧밭쥐처럼 귀여운 것들이 있었다니.

<동물 흔적 도감> 들고 직접 밖에 나가도 좋을 것 같아서..

디카 들고 조카들이랑 발자국 찾으러 동네 산에 갔는데, 이게 웬걸!

산 밑에 인적이 드문 풀밭 쪽에 너구리 똥 무더기로 보이는 게 있는 거예요.  똥 무더기들은 마르고 하얗게 되어 있었어요. 잘게 부서진 것도 있구요. 똥이 오래되면 하얗다고 써 있었는데...좀 지난 것들인 것 같아요. 자세히 보니까 똥들에 감씨들이 보이더라구요. 책에는 너구리 똥에 포도 씨가 들어있었는데 취재할 때는 근처에 포도밭이 있었나 봐요. 여기엔 감나무가 꽤 있거든요. 아마 제 추측으로는 작년에 너구리 녀석이 여기서 감을 먹고 눈 똥일 것 같아요. 조카들도 나뭇가지로 너구리 똥을 쪼개보면서 환장을 하더군요.

“이모 똥은 뭐 들어 있어?” 막 이러면서 자지러져요.

하루 종일 조카들과 똥 이야기를 나눈 아주 구린(?) 날이었죠.^^

사진을 찍고 조카 앞에서 동물 박사가 된 듯 저도 우쭐해 했어요.

앞으로 자주 시간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보려구요. 

백수에게 가장 필요한 취업 보다 더 임팩트한(?) 자극을 주었다고 할까.

크크. 어쨌든 모처럼 꿀꿀했던 백수가 묵혀 두었던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어요.

조카들에게 신나게 가르쳐 줄 수 있어서 보람도 두 배가 되었던 거 같구요.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곰이나 맹금류도 산과 들에 있는 놈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나라에 사는 야생 동물들을 우리가 지켜가려고 했다면 더 많았을 텐데 말이죠. 사람과 야생 동물들이 함께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도감으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것은 정말 처음인 것 같아요.

다들 모르겠거니 생각했던 묵힌 마음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더듬이를 갈고 닦아야겠어요.

야생 동물!!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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