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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틈 사이로 들어온 트로이 목마
* 오랜만에 한국 소설이 읽고 싶었다.
평소처럼 호흡이 긴 글이 아닌,
300페이지 안쪽의 속도감 있는 이야기가 그리웠다.
처음에는 사극 로맨스를 뒤졌으나
하나같이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르다 운명처럼 만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 '여우 누이' 설화는 익히 알고 있다.
간절한 기도 끝에 태어난 귀한 딸이
가축들을 죽이고, 결국 오라비가 던진
호리병에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
그렇다면 현대판 변주곡인 <여우 누이, 다경>은
이 고전 설화와 얼마나 닮아 있고,
또 어디서 궤를 달리할까?
* 책은 첫 문단부터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예고 없이 벌컥 열린 문, 자신의 공간을
침범당했다는 큰아들 민규의 짜증과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엄마.
어쩜 엄마들의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토록 닮아 있을까.
* 민규와 엄마 세라의 다툼도 잠시,
가족은 아빠 정환의 절친인
경호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넋이 나간
아빠도 걱정이었지만,
민규는 홀로 남겨진 경호의 딸
다경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천애고아가 된
다경 주변에는 위로 대신 유산 이야기만 속삭이는 친척들뿐이었다.
* 결국 다경은 '당분간'이라는 전제하에
정환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
둘째 선규는 상의도 없이 자신의 방을 내준
엄마에게 분노하지만, 자신의 짜증 때문에
다경이 울었다는 소식에 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딸 없는 집에 딸 같은 존재가 생긴 세라,
친구의 딸을 거두었으나 묘한 불편함을 느끼는 정환.
그렇게 다경은 한 가족 사이에 스며든
'트로이 목마'가 되어 조용히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 각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며 서술되는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뚜렷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지 않는다.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가해자가, 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다경의 행동 역시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벌'이자 '복수'라는 측면에서
권선징악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행보가 전적으로
정의롭다고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다.
* 다경이 가족을 박살 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집에는 그녀가 오기 전부터
보이지 않는 틈과 상처들이 존재했다.
한솥밥을 먹는 가족임에도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에 숨겨진 갈등은 깊었고,
다경은 그저 그 틈을 정교하게 파고들었을 뿐이다.
다만 빠른 전개 탓에 장면 전환이
다소 급격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특히 민규의 병원 장면 전에 서사를
쌓아줄 에피소드 하나만 더 있었다면 완벽했을 것 같다.
* 설화의 현대적 해석이면서 동시에
전혀 색다른 여우 누이의 탄생이다.
피 튀기는 묘사 없이 말과 행동만으로
서늘한 공포를 선사한다.
가장 현실적인 여우 누이의 모습을 통해,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여우
한 마리씩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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