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년 전, 토지를 세트로 덜컥
사놓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 위대한 여정의 길에
책을 펴들기도 전에 미리 겁을 먹어서일테다.
총 20권의 책은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내 책장에 들여놓고 보니 약간의 공포가 되었다.
* 내가 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저기 저 안에 있는 문장들을 다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하등 쓸 데 없는 걱정을
나는 그때부터 미리 하고 있었다.
* 그러다 작년에 우연히 좋은 모임을 만나
드디어! 토지를 전권 읽게 되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책장에 넣어놓고
쳐다보기만 했더 그 세월이
어찌나 한탄스럽던지.
* 그리고서는 욕심이 생겼다.
저 문장들을 따라 써보고 싶다.
나도 저 문장을 쓸 때의 느낌을 알고 싶다.
하는.
하지만 실로 방대한 그 여정을 따라가리라
결정하기에는 또 쉽지 않았다.
* 그래서 잠시나마 나를 가늠해보고자
선택한 방법.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하는
'필사적으로'에 들어간 것이다.
그 동안 내가 좋아하던 문장들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 담아 쓰고 있노라면
내가 그 분이 된 것만 같은
착가에 빠져들곤 한다.
* 작가님의 애정어린 손길로 만들어진
인물들을 따라가 같이 분노하고, 울고,
같이 행복해 하기도 한다.
특히나 토지 1권은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는 면에서 그 느낌이 남다르다.
* 한가위, 풍신 좋은 용이 아재,
소리 좋은 금돌할배를 배경으로 한
농악대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 할 때
막이 오르고 그들이 등장한다.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설명과 관계도를
그려나가기 바빴던 1권.
*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그들의 검은 속셈까지.
인물들만 따라가도 좋고,
역사적 사실들만 찾아서 읽어도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 별당아씨와 구천,
귀녀와 평산,
윤씨부인과 김개주,
용이와 월선 등 아프고 시린 사랑이 있는가 하면
검은 속내를 드러내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이도 있었다.
* 이미 한 번 읽어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읽으니 더 깊은 맛을
느끼게 되고, 문장을 따라서 쓰니
내가 그들이 된듯한 느낌도 든다.
단어 하나, 문장부호 하나
버릴 것 없는 책.
* 이제 그 대단한 여정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