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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 레이코의 '비밀'은 죽은이의 뇌에 담겨진 영상을 MRI로 수사한다는 다소 공상과학적인  설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설정이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만화의 중요 모티프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친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해 온 여고생이 저지르는 연쇄살인과 그 참담한 현장, 누구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한 밑바닥 인생의 남자가 벌이는 도착적인 살인,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방관한 군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죽음을 선물한 남자, 등등 이미 신문에서 본 듯한 사건들이 MRI수사의 대상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공상과학물로 치부될 수 없다.  더구나 레이코 특유의 섬세한 그림체로 인해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으로 장르를 규정하는 도식적인 방식이기에  동의하기 힘들다.

이번에 나온 5권에서 눈에 띈 점은 작가 자신이 주요설정으로 삼고 있는 MRI수사를 상당히 비극적인 사건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마치 짐승들만 사는 세상에서나 필요한 수단입니다!'라고 외치는 오카베, 그는  제9에서 MRI수사를 하고 있지만 이는 최후의 수단일 뿐 모든 문제의 해결은 대화와 믿음을 바탕으로 소통해야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자신의 작품토대를 미화하지 않고 다시 한번 객관적인 시점으로 정리하고 반성하는 것, 나는 시미즈 레이코의 힘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가 공상과학의 소재를  주로 삼는 것은 현실의 맹점(증거불충분, 사적인 행적의 이유)을 리얼한 상상력으로 뛰어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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