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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모모씨의 하루
  • 가난한 사람들
  • 막심 고리키
  • 14,400원 (10%800)
  • 2018-02-05
  • : 357
<가난한 사람들>에서 고리끼가 묘사하는 러시아 민중은 민담에서 막 빠져나온 인물들처럼 무엇엔가 홀린 사람들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불의 마력에 홀려 있다. “불의 마력은 엄청나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어두운 힘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무릎 꿇는 것을 보았고, 나 또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불은 어둠으로부터 갑자기 튀어나와 우적우적 생을 바스러뜨리는 붉은 야수 같다. 자연의 불가사의한 마력에 매료된 자들은 이교도적 망상에 사로잡힌 군상들이다. 파나마 모자를 쓴 점잖은 신사가 금색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를 봉처럼 마구 휘두르며 불과 대적하고, 기꺼이 불타는 목재를 뛰어넘다 최후를 맞이하는 광경은 모닥불을 뛰어넘는 의식인 슬라브족 불의 축제 ‘이반 쿠팔라’를 연상시킨다.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에 등장하는 바로 그 광란의 축제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물들은 기괴한 거미와 함께 살아간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골동품 상인 마코프 영감, 음악에 홀린 묘지 파수꾼 보드리야긴, 자기 아내를 살해하고 순교자로 만들었다고 믿는 모스크바의 대학생 만코프, 돈 때문에 사형집행인으로 나섰다가 그 부작용으로 가슴 피부 아래 공기 주머니가 부풀어 올라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믿는 주정뱅이 새잡이꾼 그리쉬까 메르쿨로프, 자신의 영혼을 시험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범죄의 세계로 들어갔던 때밀이 스테판 프로호로프와 짐마차꾼 메르쿨로프 등 생의 신비에 홀린 사람들이다.

고리끼가 풀어낸 다양한 인물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는 그 묘사에 있어서 러시아 민중의 삶을 생생한 언어로 표현했던 천재적 이야기꾼 니콜라이 레스코프에 필적할 만하다. 또한 그러한 인물군상과 이야기 방식은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민담 형태를 벗어나, 오히려 보르헤스의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 나오는 중국식 백과사전의 기이한 동물 분류법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인물들은, 그리고 때로는 사물들조차 곰, 거미, 두더지, 원숭이, 뱀, 여우, 늑대, 코끼리, 올빼미, 돼지, 두꺼비, 부엉이, 고양이처럼 묘사된다.

다소 과장스럽게 얘기하자면 고리끼가 들려주는 러시아 민중은 라블레적 의미에서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어난 관찰력과 비유에 기초한,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생명력을 지닌 문장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원시부족에 관한 민족지 같은 성격도 엿보인다. 그래서 눈앞에 펼쳐놓은 듯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은 러시아 민족지에 관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기도 하다.

러시아 민중은 무엇엔가 홀리지 않았을 때 선량하고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그 이상으로 우둔하고 고집스러운 면모를 지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련할 정도로 무모하고 자기파괴적이다. 이를 두고 고리끼는 “스스로의 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면 우리 바깥의 무엇인가에 믿음을 두게 된다”고 냉철하게 비판한다.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상하다.(‘푸른색 생각들’) 법정소송에 빠져 사는 목욕탕 관리인이자 ‘모자 제조공’인 애꾸눈 사내, 과학에 대한 불신과 존재의 불확실성에 사로잡힌 동네 이발사이자 돌팔이 의사 발랴신, 무신론적 자유사상가인 대머리 뚱보 땜장이 푸쉬카레프, 열렬한 애국자이자 시계공인 코르초프 같은 인물들은 관찰자로 하여금 공포를 자아낸다.

레프 톨스토이가 처음으로 삶의 공포를 느꼈다는 모르도바식 공포. “아르자마스 사람들의 생각은 제멋대로이다. 악동들에게 털이 반쯤 뜯겨 고문당한 새들이 이따금 두려움에 유리창의 속임수에 부딪혀 부서져 죽는 것과 비슷하다. 부질없는 푸른색 생각들일 뿐이다.”

‘푸른색’ 생각들. “어쩌면 마을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내뿜는 입김일지도” 모를 그것은 아마도 러시아 민중이 가진 유동하는 공포, 거대하지만 참을 수 없이 불투명한 투명성으로 표상되는지 모른다. 그들을 둘러싼 ‘그 공기는 뚫을 수 없는 유리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고리끼는 러시아 민중의 놀랍도록 슬기롭고 독창적인 면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곡예 부리듯 복잡다단한 생각과 감정’에 기인한다. 그래서 러시아 민중은 때로 범인들조차 철학자로 보이기도 한다. 모르도바인 산림지기이자 여자 마법사인 이바니하는 외모 면에서 여러모로 마녀의 전형인 바바야가를 떠올리게 하지만 헌신적인 곰 사냥꾼으로서 케레메트 신을 믿는 그녀는 민중들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그리스도 사제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진실의 가치를 옹호하며 인간과 신의 공존, 신들 간의 화평을 주장한다.

자물쇠 제조공이자 땜장이인 푸쉬카레프의 말은 존 레논의 ‘이매진’ 노랫말을 연상시킨다. “신이란 지어낸 것일 뿐입니다. 우리 위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오직 푸른 대기뿐입니다. 우리의 온갖 생각들은 이 푸른 대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푸르게 살아가고 푸르게 생각하는 거지요. 바로 여기에 모든 비밀이 있습니다. 나의 삶이든 당신의 삶이든 그 본질은 아주 단순합니다. 존재했다가 썩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인민 예찬자인 수의사 밀리 사모일로비치 페트렌코는 배설물의 화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사회적 계층의 사다리 높은 곳에 자리한 사람일수록 음식을 소화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린다. 앉아서 생활하는 관리와 법률가들의 위장은 섭취하는 음식의 50퍼센트도 채 소화시키지 못함으로써 음식물을 낭비한다. 반면 농민의 위장에서 나온 배출물에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정직하게 소화시키는 일에 답이 있다고 주장하는 페트렌코는 “정신적 에너지는 위장과 내장이 일한 결과물”이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러시아 민중의 영특함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러시아 민족 특유의 고집이 노동의 숭고성과 만나는 지점이다. 볼셰비키 혁명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정원사는 그를 둘러싼 혼돈과 무관하게 그저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다. 정원사는 잔디밭에 침범한 병사들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며 그들을 내쫓는다. 혁명은 스쳐지나가는 것이지만 세계는 지속된다. 결국 세계를 지키는 것은 그러한 일상의 노동이며, 자신의 노동에 홀린 사람들이다.

고리끼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고 나면, 러시아 민중에 대한 편견이 바뀔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러시아 민중에 대한 미국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평가도 찬사로 들리게 된다. “제가 보기에 당신들은 보람 없는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헛도는 기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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