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하고 말하는 이유
한 신문사에서 쓴 '당신의 여자친구가 페미니스트라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남성만 참여한 설문인데, '당신의 여자친구가 페미니스트라면?'이란 질문에 74.7%의 남성이 부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말이 안 통할 것 같다'(30.7%), '왜 페미니스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30.7%), '남들한테 창피하고 소개하기 꺼려져서'(4%), '외모적인 문제 때문에(노브라, 숏컷 등)'(4%) 등이 꼽혔다.
페미니즘이 곧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불균형한 사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발언할 기회마저 잃는다. 당장 모두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낼 수 없다면 대화조차 단절되어야 할까. 우리는 다 같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박은지,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22~23쪽
이처럼 페미니즘이 '불균형한 사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선뜻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기가 힘들다.
나는 나와 다른 의견을 마주했을 때 그냥 입 다무는 것을 좋아했다. 정 껄끄러우면 그 사람과 조금씩 멀어지면 그만이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위의 책, 6쪽
때론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여성이라 겪는 불합리한 상황을 참고 받아들일 때도 많다.
며느리들이 시댁에서 요리와 설거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서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데, 남자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좋은 남편, 자상한 남편이 된다. (중략) 결국 좋은 남편의 커트라인은 좋은 아내에 비해서 너무나 낮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아내는 거의 원더우먼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위의 책, 49~51쪽
예를 들어 남편이 집안일을 하면 '자상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아내가 집안일을 한다고 해서 아무도 '자상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데 맞벌이하는 아내가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아내로 평가받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성별에 의해 규정되는 힘든 지점에 공감하며 논의하고 시선을 바꾸어보자
'여자만 힘들어? 남자는 더 힘들어!' 그런 식으로 누가 더 힘든지 따지고 재어보자는 것이 아니라, 성별에 의해 규정되는 힘든 지점에 공감하며 논의하고 시선을 바꾸어보자는 뜻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위의 책, 18~19쪽
남성이 안 힘들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성별로 인해 각자 더 힘든 점이 분명히 있다. 누가 더 힘든지 따지기보다는 고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 서로의 힘든 지점에 공감하며 조금씩 바꾸어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주변에서 시댁 명절이나 제사 등의 일로 동서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자주 본다. 남편들의 집안 행사에 아내들이 역할을 분담하며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의 정도를 가늠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중략) 왜 아무도 그 부엌에서의 남자들 역할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것일까? 왜 동서가 밉고, 시어머니가 미워야 할까?
위의 책, 217쪽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하며 읽은 부분은 위 문장이었다. 명절 때면 집안일을 더 하고 덜 하냐에 따라 동서지간,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를 나도 자주 보고, 들었다. 아마 '여자가 마땅히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과 '여자만 집안일을 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부딪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여성들만 서로를 불편해해야 할까? 누구도 누구를 미워하지 않는 명절을 위해 다 같이 집안일을 분담하거나 효도는 셀프로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