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기쁨은 사라진 사람들 “고기능 우울증”/도서제공 포레스트에서 보내주셨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개선하기까지 전 과정을 겪어본, 전문가이자 환자인 개인의 기록과 연구결과가 담겨있습니다. 환자를 연구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인간으로 본 내용이라서 좋았다고 적어둡니다.
“그녀의 선구적인 연구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듯 모두를 위해 애쓰지만 정작 자신의 기쁨은 서서히 사라져 가는 피로감, 무감각, 초조함을 ‘고기능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이라는 이름으로 명확히 정의한다.”
고기능우울증은 어쩌면 맞벌이 가정의 K엄마, 건실한 직장인 중 다수가 겪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나 하나만 희생하면, 내가 좀 참으면, 이번일 만 정리되고 나면... 그런 저자에게 주치의는 이렇게 말하죠.
“환자에게 마조히즘이라는 용어를 발설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당신은 마조히스트입니다.”
마조히즘이라는 말에 당혹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자기희생’도 마조히즘의 한 가지 양상이며 자기희생이 ‘이용하는 사람들만 끌어들이는 상태’를 만든다는 걸 알면 더 놀라게 되죠. 사실 K장녀나 맞벌이 가정의 K엄마는 ‘문화적 마조히즘’의 희생양입니다. 재생산비용을 떠넘긴 방식에 아직도 작동하고 있는 거죠. 여기에 여성이라는 포지션 ‘관계적 마조히즘’도 작동하게 만듭니다. 육아, 집안일을 여성이 도맡는 것, 이를 위해 여자아이에게 순종적일 것을 가르치죠. 마지막으로 우리는 직업적 성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커리어 마조히즘’에도 약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타인의 필요, 타인의 인정을 위해 나를 사용하는 행위죠. 고기능 우울증은 남에게 소비되어 에너지를 소진당한 개인에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걱정하지마”가 폭력이고 우울증 환자에게 대화단절과 거부로 느껴진다는 구간을 읽자 부모교육서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걱정하지마를 단절로 받아들인 십대가 자살을 시도한 케이스였거든요.
‘비타당화’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작가나 연예인에게 ‘그런 직업이니 악플은 견뎌라’거나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정도는 한다’고 가스라이팅하는 것도 비타당화죠. 책의 케이스는 ‘1년도 되지 않아 열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습니다. 여러분이 속한 집단은 어떤가요?
가장 좋았던 파트는 ‘가치 Values'에 대해 알려준 7장입니다. 고장 난 나를 받아들이는 인정, 감정을 해방시키는 환기도 좋았지만 내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은 살아남기 위해 상처받아온 모두가 경험해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행복이란 거창한 목적지가 아니라, ‘기쁨의 순간들points of joy'이라고 부르는 작은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했다.”
저는 서평을 올리고 먹을 딸기빙수를 주문해두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올 예정이니까 기다리는 지금도 기쁨의 순간중 하나죠. 여러분의 오늘의 기쁨의 순간은 언제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