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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지님의 서재
  • 각별한 실패
  • 클라로
  • 16,200원 (10%900)
  • 2025-04-15
  • : 2,330

우리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느라 시도를 포기하기도 하죠. 그러나 번역가는, 작가는 실패할 걸 알면서도 시도하는 게 운명입니다. “각별한 실패”/도서제공 을유 을유문화사에서 보내주셨습니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Try again, Fall again. Fail better” 


이 책은 무자비한 조수에 떠밀려 항해에 실패하고 떠내려온 뭍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목이 타는 선원과 같은 삶을 사는, 작가, 화가, 인생에게 말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번역가인 자신의 작업, 번역과 글쓰기 모두가 ‘실패’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언어 간의 넘을 수 없는 틈을 마주하는 번역과 끊임없는 수정과 실패로 완성되는 글쓰기 모두 완전한 끝이 없는 작업이죠. 그래서 실패를 에세이 소재로 삼았습니다. 책의 구성에서 “막간”으로 표기된 부분이 작가의 실패에 대한 감상이자 단상입니다. 막간4의 ‘세이 소나곤 방식’에 이르면 평이하게 계획했지만 실천하지 못한 것들을 그저 심드렁하게 감상 없이 늘어놓았는데, 이 실패리스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에서 “주인공을 쓸모없지만 눈길을 끄는 지독한 고통 속에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소설 끝맺기.”까지 다양하죠. 그녀의 실패리스트는 매우 다양해서 따라하고 싶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기”라든가 “비슷한 두 가지를 구분하기.” “왼손으로 글쓰기” 같은 것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것들이죠. 


“말장난은 텍스트의 살갗에 박힌 미인점이라고 해두자. 모든 단어, 모든 문장 앞에서 나는 좌절한다.”


막간 3의 경우는 실패리스트가 유명한 문장의 패러디입니다. 이 책의 백미죠. 번역가인 그녀의 직업을 충분히 발휘한 이 응용된 문장들을 보고 원문을 찾아내실 수 있다면 충분히 책을 읽으셨으니 “책을 태워버리는 일”에 도전하셔도 됩니다. 그녀는 실패했지만요.


이 책은 문학을 분명하게 가공하려는 번역가의 실패와 그 무한한 벌칙의 고통을 적어놓은 작업일지에 가깝습니다. 작가는 직업적으로 완전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번역이라는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텍스트의 근원적인 목적,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려고 끊임없이 읽고 또 읽으며 쓰고 또 씁니다. 그 답이 쉽지 않은 이유는 대 다수의 작가가 심연에 빠져있기 때문이죠. 월트 휘트먼에게는 밀크펀치라는 심연이, 페소아에게는 브랜디라는 도망치기 쉬운 심연이 있었습니다. 콕토를 인용하면 프로스트에게는 지나친 스노비즘이라는 심연이 있죠. 저자는 작가들의 작품속에 비릿하게 남아있는 그들의 언어를 생성한 심연들을 떠다닙니다. 


언어학자처럼 낱낱이 이유를 달아 분석한 작가들에 관한 내용보다는 자신의 실패를 기록한 받아쓰기, 딕테에서 처음 만났던 그 영혼과 지성이 뭉친, 의식하지 않고 받아 쓰기된 텍스트에서 작가의 의도를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완전할 수 없는 글쓰기라는 장르를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그녀의 심연을 그대로 내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어 중추가 뇌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뇌에서 미미하고 연약하며 우스꽝스러운 위치를 차지한다.” 이 책을 보신다면 247쪽 부터를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며 이만 총총


단순한 작법서나, 규칙을 전달하는 실용서가 아니라, 문학을 하는 우리에게 끊이지 않는 생각의 길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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