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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kat님의 서재
  • 마흔의 서재
  • 장석주
  • 13,500원 (10%750)
  • 2012-11-21
  • : 1,513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마흔에 다시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아직 마흔은 아니다. 이제 서른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가끔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넘겨보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만큼 바뀌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특히 반가웠던 건 차라투스트라에 관한 내용이었다. 작가의 말대로 “뼈가 휘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던 청춘의 기억을 다시 불러본다. 절망을 입에 달고 다녔던 그 시절에 책 읽기는 마음에 무겁게 가라앉은 짐을 내놓는 출구 같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철학으로 읽지 못했다. 아니 그걸로 무얼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벅찬 일이었다. 다만 삶을 단번에 꿰뚫어 통찰하는 자만이 할 수 있을 법한 날카로운 시어들이 와서 의지를 불태우고 간 건 아니었나 싶다.

오랫만에 다시 이 책으로 다시 차라투스트라를 만나게 되었다. 도저한 절망에서도 '긍정이라는 축복'을 길어낼 수 있었던 그 힘으로 지금 다시 나태한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이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경우다. 작가의 말대로 차라투스트라의 어조를 닮은 글이 마음을 후빈다. 고통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예언자'은 이런 식으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번민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우리 방랑자들은, 항상 보다 외로운 길을 찾아가는 우리들은, 하루를 끝냈던 그 자리에서 다음날을 시작하진 않는 것을. 그러므로 어떤 새벽도 황혼이 우리를 이별했던 그곳에서 우리를 찾아내지는 못함을.”

<고별에 대하여>


언제고 시간 나면 읽어보리라 했던 책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뽑아낸 책들의 정수들을 읽으며 '내 마흔의 서재'를 꾸밀 상상을 해본다. 다시 책이 삶을 이끌어줄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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