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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tah의 서재
  •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
  • 14,400원 (10%800)
  • 2022-05-30
  • : 85


스페인 반년살이라고 해서 스페인 이야기만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페인을 너머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모로코까지 누비는 스페인 생활기+ 유럽 유랑기에 가깝다. 6개월간 스페인에만 머물게 아니라면 주변국들을 둘러보는 가이드로서도 안성맞춤이다. 그 여행길에서 생긴 우연한 만남과 인연이 녹아있는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는 게 꽤 재밌다.
 
국적은 다르지만 여행지에서 스치 듯 만난 다양한 여행객, 배낭족들과의 유대감은 흥미롭고 때때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술술 읽히는 문체에 푹 빠져 저자와 유럽 곳곳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에 매료돼 있을 것이다. 




“레나, 이 집은 너의 집이야. 그러니까 꼭 다시 발렌시아로 와.”
매번 쫄리지만...!  
그럼에도 용기있게 집을 나서는 저자에게 다음엔 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녀의 다음 행선지가 궁금해진다.







"레나, 아이가 있어?"
"아니, 난 아직 결혼을 안 했어"
"사람의 몸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돼 있어. 나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딸이 있어."
재키의 말이 맞았다. 그 뒤로 나는 절대 자식의 유무와 결혼 여부를 엮지 않기로 했다.- P19
이것도 이탈리아사람들이 해변을 대하는 방식일지 모르겠지만, 1인 1 파라솔 정도는 해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모래사장 가득 히 파라솔이 꽂혀 있었다. 오히려 비치타월 없이 모래 위에 드러눕는 사람은 있어도 파라솔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워낙 많은 파라솔이 꽂혀 있어서 옆 가족 파라솔과 또 다른 옆 가족 파라솔 사이에 타월을 깔고 누우니 나에게도 약간의 그늘이 생겼다. 나름 럭키 포인트였다.- P175
그렇게 시칠리아에서 바리까지의 긴 여정은 끝이 났다. 장화 모양에 빗댄 표현을 하자면, 발가락에서 발뒤꿈치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총 14 시간이었다.- P195
최소 30년은 돼 보이는 차에 택시비를 흥정하고 올라탔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뒷좌석 바닥엔 구멍이 나있었다. 운전석엔 내비게이션 화면 대신 기억 속에도 잊혀 진 카세트테이프 꽂는 자리가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미터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을 필요가 없었다. 모로코에서의 가격은 적혀 있는 게 아니라 부르는 것이니까!
- P272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여행이 어땠냐’는 질문에는 모로코 사막과 독일의 맥주축제 후기와 함께 짧은 에필로그로 수화물 분실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람들은 여행 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짐을 잃어버린 것에는 크게 반응했다. 본인의 경험담이 나오기도 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봐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별거 아니라며 언젠가 이 일이 생길 걸 알고 있었다는 사람처럼 굴었다.- P287
"레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기분이 어때?"
"사실 난 여기에 더 있고 싶어."
" (굉장히 놀라며) 뭐? 그럼 더 있으면 되잖아!"
"그런데 비자도 이제 곧 끝날 거야."
"그런 거 그냥 무시해버려.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봐."
"그러다가 어느 날 추방당하면 아마 다시는 유럽에 오지 못할 거야."
"…레나, 스페인에는 파트너 비자라는 게 있어. 네가 내 파트너라고 하 고 비자를 받을 수 있어."
"스페인은 동성 파트너도 인정해 줘????"
"그럼! 스페인은 동성 파트너도 인정해 준다고! 너랑 내가 파트너라고 속이고 비자를 받을 수 있다니까!"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를 불법 체류자에 이어 동성애자로 파트너 비자를 받게 하려던 마르타는 내가 와하하 웃음이 터지자 본인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싶었는지 나를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다운 마지막 인사였다.
"레나, 이 집은 너의 집이야. 그러니까 꼭 다시 발렌시아로 와."-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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