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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단편 『쥬디 할머니』 에 수록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가 있다.

그 소설에서 '나'는 월북한 오빠를 둔 죄로 출세길이 막혀버린 남편의 멸시와 부모에 대한 부양,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두고 있었다. 어느 날 같이 고민을 나누던 설희 엄마가 미국으로 떠나고 돌아오던 길, 틀니가 아프기 시작한다.

방에서 때때 굴렀던 나.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나는 그런 아픔이 부끄러운 나머지

틀니의 아픔으로 삼으려 들었고,

나를 내리누르는 온갖 한국적인 제약의 중압감,

마침내 이 나라를 뜨는 설희 엄마와 견주어

한층 못 견디게 느껴지는 중압감조차

틀니의 중압감으로 착각하려 들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틀니의 아픔으로 생각할 만큼 무겁게 짓눌렀던 현실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게 가장 무거운 '틀니'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가장 아픈 틀니.

나에겐 '부모님'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 특히 아프신 와중에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시며 간섭하시는 엄마.

나에 대한 옷차림이나 체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먹는 것을 간섭하시고 잔소리를 하신다.

아이들에게도 내 단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곤 하는 엄마 때문에 나는 창피할 때가 많았다.

나는 동생과 이야기를 하며 하소연하곤 했다.

"내 나이가 벌써 중년인데 나는 아직도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야."

집에 내려가기 2주 전부터 나는 긴장 상태에 빠졌고 돌아오고 나서도 2주를 끙끙 앓는다.

이번 설에도 나는 그 긴장 속에서 2월을 통쨰로 보내야 했다.


지난 2025년 독서모임 마지막 시간 때 우리는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었다.









저자 서동욱 교수는 말한다.



사랑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말 속에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을 현실로 만든다.


이 문장을 벗들과 함께 나누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한 게 언제이던가?

사랑한다는 말이 엄마를 구원할 수 있나?

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받고 있지만 우리 엄마에겐 누가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사랑한다는 말.

그건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말이라는 걸 서동욱 작가가 알려주었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도 나에게 책임을 지어보자.

엄마가 또 비아냥거린 말을 할지언정 이 말이 엄마를 살리는지 보자...

나 자신이 워낙 무뚝뚝한지라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용기내어 전화 끊기 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조그맣게 해보았다.

크리스마스때는 안 쓰던 연하장을 써서 보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늘 똑같았다. 그저 반복할 뿐이었다.

도저히 안 나올 떈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산책을 하다가 엄마와 통화를 했다.

그 날 나는 '항상 감사합니다'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 때 들려온 엄마의 한 마디.

"나도 항상 감사해."

내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어 "네?" 라고 묻자 엄마는 다시 말씀하신다.

"나도 항상 감사하다고."

그 말 속에 엄마가 내 말을 담아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

감사한다는 말.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 않지만

내 틀니가 가벼워지지는 않지만

작은 순간이나마 서로에게 힘을 준다는 걸 알게 한다.

오늘 엄마가 병원 진료를 보시러 오시는 날이다.

새벽부터 올라오시느라 힘들고 지친 서울길.

또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겠다.

서로의 틀니가 덜 아플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오직 그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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