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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의 서재

  나는 요즘 행복하지 않다.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일까? 내 집 마련을 못해서? 직장이 어려워서? 물론 이것들도 포함이 된다. 그런데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건 바로 SNS이다.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에서 작가는 SNS의 중요성에 대하여 거의 절반을 할애한다. SNS로 지금의 책을 써내려가고 새로운 커리어로 확장된 케이스이다보니 작가에게 SNS는 최고의 수단일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새 마음을 먹고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좋아요가 10개도 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이웃들의 선택도 받지 못하다. 처참한 조회수를 보면서 내 마음도 처참해진다. 결국 내 역량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싶어 우울해지곤 한다. 


이 조회수를 생각해보면 이 시대는 행복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내 행복이 남들의 조회수에 갈리니 말이다. 이제 100만 유튜버가 된 가수 강남도 매일 조회수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우리의 기분을 '내'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주는 '조회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처참한 조회수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걸 해? 말어? 

마음같아서는 당장 때려치고 싶다. 내 조회수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포기하고 싶다. 내가 이걸로 밥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해야 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쓴 글 이곳저곳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쓴  이상 꾸역꾸역 써내려갈 수 밖에... 언젠가는 나도 전능하신 알고리즘님의 선택을 받아 떡상하게 될 날을 기대하며 해 나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폴인>이라는 구독서비스를 이용한다. 우연히 그 곳에서 프로게이머 이민형 선수의 인터뷰를 보았다. 2023,2024년 두 번이나 우승했음에도 주전에서 후보 선수로 밀려난 시절을 선수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로 이야기한다. 당연하다. 이제부터 본격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벤치로 강등되다니. 창피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게 있냐는 제작진의 말에 그는 그만의 명언을 말해준다.  
"이것도 결국 좋은 서사가 될 거다." 

자신의 역경을 단지 하나의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 것. 오히려  "이런 시기, 위기가 있어야 서사가 재미있어지잖아요." 라고 말하는 이민형 선수는 자신의 실패를 큰 이야기 속의 하나의 에피소드, 기-승-전-결에서 가장 중요한 '전'부분의 한 에피소드로 간주하고 있다. 
자신의 삶의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 우승하고 파이널MVP를 받는 것. 단지 그 결론으로 다다르는 과정 안에 한 두개의 위기의 에피소드가 추가될 뿐이다. 그 에피소드들은 아슬아슬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해 주는 양념과도 같은 역할을 해 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은 더 재미있어진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는 그가 쓴 결말대로 우승과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이민형 선수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따라서 삶의 희비가 바뀌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자신의 삶을 희극으로 삼느냐 아니면 비극으로 이야기하느냐. 그것에 인생의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슬프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엄마'이다. 
엄마의 삶이 실패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는 온갖 고생 끝에 투병하는 자신의 삶을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왜 안 그렇겠는가. 가족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고생하셨는데 파킨슨병과 같은 무서운 병을 허락하셨다니. 평생 십일조를 내고 교회 청소를 하며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런 무서운 병을 주시다니. 
그 이후 엄마의 서사는 더욱 슬퍼져갔다. 자신을 더욱 안스럽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불행 서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차츰 악화되시는 엄마의 병세에 따라 엄마의 서사는 더욱 깊어져간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니 나 역시 불행의 서사를 쓰고 있다. 이 글 맨 앞에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조회수가 낮아서, 알고리즘님의 간택을 받지 못해서 불행까지는 아니지만 처참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나 역시 나만의 비극 서사를 쓰고 있었다. 
정혜윤PD의 에세이 <책을 덮고 삶을 열다>에서 작가는 우리의 삶을 구하는 방식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이야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이야기하는 동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 것.우리의 이야기를 남이 대신하지 않게 하는 것.우리의 가장 멋진 점을 이야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내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 
이민형 선수는 자신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거대한 희극 속의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며 서사를 만들어갔다. 음식의 맛을 더욱 감칠나게 하는 조미료와 같은 역할로 실패를 받아들였다. 그 방식대로 그의 삶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정혜윤PD는 우리의 이야기를 남이 대신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남의 조회수에 연연한다면 그거야말로 남이 우리의 이야기를 대신 써내려가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나의 이야기를 이민형 선수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꾸어보는 거 아닐까? 직장 상사에게 혼나면 직장에서 고진감래하는 성장 드라마로 이야기를 말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와 같은 만화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새해 거창한 목표 열 가지보다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할 방법 찾기. 자신의 인생을 희극으로 바꿔 이야기하기. 그보다 더 거창한 목표가 있을까?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하루를 이민형 선수처럼 시작하길 바래본다. 아니 2026년을 이민형 선수처럼 이 한 마디로 가득 차길 바래본다. 
이것도 결국 좋은 서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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