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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의 서재

둘째 아이가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2주째. 

기초인 바이엘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은 쉬운 단계이기 때문에 피아노 치는 걸 즐거워 합니다. 


아이보다 한 학년 어린 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제 아이보다 피아노를 어린 시절부터 배워서 체르니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체르니를 치게 되면 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집니다. 많은 아이들이 피아노를 포기하는 부분도 바로 체르니 과정입니다. 체르니를 배운다는 3학년 동생은 차마 그만 두지 못하고 선택한 방법은 '도망'이라고 합니다. 피아노를 치는 대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숨어 매일 선생님이 그 학생을 찾느라 숨바꼭질 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묻습니다. 


너는 피아노 치는 게 좋아? 그러면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말합니다. 


네가 쉬운 걸 칠 때는 재미있다고 말 할 수 있어. 

하지만 힘든 과정까지 올라가면 그 과정까지도 견디고 즐길 수 있어야 정말 재미있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그 동생은 어려운 체르니를 치기 싫어 도망다닌다는 건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 정말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건 싫은 부분까지 감수할 수 있는 것. 그걸로 결정할 수 있어. 


제 말을 듣고 나면 아이는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두고 봐야 하기에 지금은 그저 아이를 지켜 볼 뿐입니다. 

  어제 글쓰기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 마지막 클로징,  한 장면이 들어옵니다.


빛이 없어도 나아갈 수 있는가? 


타인의 칭찬보다, 기대가 없어도 성과가 없는 어둠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걸 묻는 강사님의 질문에 마음이 두둥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질문해보았죠. 과연 나는 빛이 없어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인가?
제 삶의 슬로건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겠습니다> 입니다.더 좋아해야만 끝까지 할 수 있다라는 걸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 앞에 서 있자니 다시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힘든 걸 좋아해야 한다고 그걸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과연 나는 힘든 걸 좋아하나? 하지만 자신 있게 YES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게 과연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걸까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확실하고 강력하게 종교적 선을 추구한 조시마 장로는 그의 유언에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저 한 우연한 순간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랑해야 한다. 

순간적인 사랑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심지어 악당조차도 그런 사랑은 하는 법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한 순간만을 좋아하는 사랑. 그 사랑은 악당조차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영원토록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사랑이죠. 역사를 돌아보면 위인전의 인물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가 안 들린 가운데서도 끝까지 음악을 만들어낸 베토벤, 가난 속에서도 음악을 사랑한 모차르트, 귀양 살이 중에도 끝까지 글을 쓰고 자신을 단련한 정약용 등.. 그 분들은 어둠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었기에 사후에라도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영원을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혜진 작가의 소설 《오직 그녀의 것》에서는 편집자 홍석주가 주인공입니다. 












  많은 편집자의 로망이기도 하지만 편집자 홍석주 또한 작가를 꿈꾸며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글쓰기를 포기했을 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또는 행운이 없어서. 또는 바쁜 회사 생활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압니다. 글쓰기를 포기한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요. 



 홍석주는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뜨거운 열정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한순간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말한 순간적인 사랑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적인 사랑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모든 걸 좋아하는 것.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대상만이 오직 자신의 것, 그녀의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걸 소설 속 편집자 홍석주는 책 만드는 일에서 찾았고 편집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 그걸 말할 때 저는 떠오른느 드라마가 있습니다. 김태리씨가 펜싱 선수로 출연한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입니다. 한 때 잘 나가는 펜싱 기대주에서 그저 그렇고 그런 펜싱 선수가 되었던 나희도. 그녀는 자신의 신세가 슬프지만 펜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좋아서.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죠. 
"난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거든.   지고 실패하는 데 익숙해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또는 지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 
지고 실패하는 것마저도 실망하지 않고 그 과정까지 사랑하는 것.그 사랑과 의지가 나희도를 끝내 펜싱을 끝까지 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저도 생각해봅니다. 과연 나는 좋아하는 걸 끝까지 좋아할 수 있는가?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이 과정을 끝까지 감내할 수 있는가? 
좋아하는 걸 더욱 좋아하겠습니다. 이 말을 다시 정정해봅니다. 빛이 없더라도,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더 좋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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