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꿈꾸는 사람의 서재
  • 생식기
  • 아사이 료
  • 15,300원 (10%850)
  • 2025-09-26
  • : 6,700


* 업체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사이 료의 소설 『생식기』를 읽게 된 배경은 책 표지 뒷면의 한 줄 이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난 삶은 실패작인가요?


이제껏 인간 이외 다른 종(種) 들이 인간을 탐구하는 인간탐구하는 소설은 많았다.

동물 또는 사물의 입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통해 말하는 소설들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 『생식기』 처럼 한 남성 생식기, 더구나 동성애자 남성의 생식기가 화자가 되어 인간을 말하는 소설은 이 소설이 최초가 아닐까?


먼저 나를 이 책으로 유혹한 한 문장을 생각해본다.

정해진 길을 벗어난 삶은 실패작인가요?

소설 속 화자인 남성의 생식기의 역할을 생각해보자. 이성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에 맞게 그 재능을 쓸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생식기의 역할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동성애자로 태어난 생식기의 주인공 다쓰 쇼세이에게 생식기는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곳에서 동성애자 남자의 생식기는 정해진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쇼세이의 생식기는 묻는다. 정해진 역할을 벗어난 삶은 실패작인 거냐고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과 다른 삶들을 실패작으로 여겨지고 거부되어 온 다쓰야 쇼세이. 그가 택한 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관심있는 척 '의태'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라는 개체를 거부하고 혐오하는 이 시대에 굳이 헌신하고 싶지 않는 그는 열심인 척, 또는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는 자문한다.

내가 왜?

이 사회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이 사회를 위해 공동체에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래서 그는 최소한으로 일한다. 그저 자신의 정체성을 들키지 않고 먹고 살 경제적인 자립심이 있을 수 있을 정도로만 말이다.


​아사이 료의 『생식기』 는 다쓰 쇼세이가 이 공동체의 발전에 헌신하지 않기로 한 배경을 상세히 설명한다. 쇼세이의 생식기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나라도 나를 거부한 이 사회를 위해 나를 바치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하는 부분은 나도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한다하지만 내가 인정한다고 하는 부분마저도 이성애자의 우월권이며 특혜라는 부분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들 자체의 존재가 왜 인정해 줘야 하는가?

소수자들은 이미 존재하는데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이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부인하는가?

이 강력한 질문 속에 나 역시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인정한다는 것조차도 철저하게 이성애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재 조금씩 '다양성'을 말하며 소수자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그 역시 소수자가 만들어낸 분위기가 아닌 신의 역할을 하려하는 이성애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일 뿐이다. 그 분위기에 소수자들은 그에 맞춰 행동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만약 이 소설이 소수자인 다쓰야 쇼세이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회라서 공동체에 봉사하지 않는 쇼세이의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그쳤다면 이 소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소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사이 료는 쇼세이와 같은 동성애자이면서 정반대의 행동을 택하는 직장 동료 '소우'의 존재를 통해 반전을 드러낸다.

부정형의 의사 표시는 아무도 안 봐 줘요.


비록 주변에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달라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비록 그들이 미울지라도 끝까지 노력하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소우의.

소우의 주장은 단지 소수자의 개념에서만이 아닌 이 사회의 무기력함과 불의에 진절머리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이 사회가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하지만,

정치가들이 다 그놈에 그 놈이지만, 어차피 이 사회의 불의는 뿌리뽑기 힘들지라도 단지 절망함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봐 주지 못한다. 최소한의 의사 표시라도 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없는 존재로 보여질 뿐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 한 가지 질문만이 남는다.

[온전함] 속에 살 수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