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내게는 쌍둥이 딸이 있다. 신기하게 두 딸 중 첫째는 나를 꼭 닮았고 둘째는 아이 아빠를 빼닯았다. 언젠가 가족들이 한 지인의 전시회에 참석했을 때 한 분이 첫째와 나를 보고 한 마디 하셨다. "어머~ 리틀 사라네~"
그 말이 기분이 좋았던지 첫째는 나를 보곤 말한다. "엄마, 나는 리틀 사라에요." 아이의 말을 들을 때마다 혹시 내가 잘 못 되면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고 겁이 나곤 한다. 아이가 지금은 나를 닮은 걸 좋아하지만 성장하면서 나와 닮았기 때문에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항상 나를 두렵게 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김영탁 작가의 장편소설 『영수와 0수』에서는 이런 나의 상상을 확장시킨다. 대부분의 SF소설이 그렇듯 『영수와 0수』 에서도 디스토피아 미래를 그린다.
바이러스가 판쳐서 방호복을 입고서야 외출할 수 있는 시대,
AI로 인간들이 살아갈 의미를 잃어 자살이 급증하는 시대,
서로의 기억을 팔고 사며 자신에 맞게 편집해서 살아간느 시대,
그리고 또 하나, 불법이긴 하지만 돈만 있으면 나와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필요할 때 장기를 꺼내 쓸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에 살아가는 영수가 있다. 자살하고 싶지만 가족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어 삼십년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존재이다. 죽지못해 살아가는 인생인 그에게 솔깃한 제안이 온다. 복제인간을 만들어주는 브로커를 연결해주겠다고 말이다. 그 제안을 강하게 거부하던 그는 자신은 죽고 복제인간인 0수에게 대신 죽게 하자며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제 복제인간 0수가 대신 자신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영수. 하지만 일주일 후, 죽음을 시도하기 직전, 0수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기가 막힌 현실에 불량품 아니냐고 따지는 영수, 하지만 브로커의 대답은 말을 못 잇게 한다.
"복제 인간이 지 인간 닮은 게 불량인 거냐고?"
영수가 죽기 위해서 자신의 분신 0수를 살려야 한다. 그래서 영수는 0수를 만나 밥을 먹이고 기운을 북돋워준다. 그리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들은 다른 일행들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난다.
소설에서 영수에게 브로커를 연결해주었던 기억편집가 오한은 묻는다.
기억을 사고 파는 시대에 어떤 기억이 가장 값이 나가는지 말이다.
과연 사람들은 어떤 기억에 비싼 값을 치룰까. 이 질문은 소설을 읽는 내내 끝까지 이어져오는 질문이다.
소설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에게 드라마틱한 일상은 없다. 감명 깊은 순간도 없다. 여행을 떠나면서 밝혀지는 진실도 별로 색다른 게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이 0수를 일주일만에 죽고 싶을만큼 공허함을 느끼게 했나 라는 질문이 또 다시 생겨난다.
무엇으로 0수를 살게 해야 하는가?
처음 값을 나가는 기억을 찾으려고 했다면 0수를 무엇으로 살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값이 나가는 것보다 영수와 0수가 처음 만나 서로 챙기며 기억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일상들이 있다.

비싼 기억들은 0수를 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인생의 기억들을 이루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서로를 살린다.
일방향으로 살리는 게 아닌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것.
그건 작은 것들의 힘이었다.
영수와 0수 둘 중 누가 실제로 살아남았는지 중요하지 않다.
소설 말미.
살아남은 자의 한 마디가 묵직하다.
나는,
나를 구해내는 나를 봤어요.
인생을 끝까지 살아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건 결국 내가 나의 인생을 구하는 것 아닐까?
추석 연휴 부모님을 뵈었다. 자신의 병에 대해 원망을 쏟아내는 엄마를 보며 나는 『영수와 0수』를 생각했다.
아... 엄마는 엄마를 구해내고 있지 못하구나...
잊을만하면 '엄마, 나는 리틀 사라에요'라고 말하는 딸을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꼭 힘을 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리틀 사라로 사는 삶이 나쁘지 않다고.
나를 구해내는 것이 바로 리틀 사라인 첫째를 구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묵직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