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와 0수』라는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고 있다. 영수와 0수, 똑같이 발음되는 이름인데 차이가 뭘까? 바로 0수가 영수의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영수와 0수』 는 먼 미래를 그린 SF소설이다. 먼 미래라고 했지만 어쩌면 조만간 있을 이야기이기도 하겠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으니까.
대부분의 SF소설이 그렇듯 『영수와 0수』 에서 보여지는 미래도 그닥 좋지 않다. 바이러스가 퍼져서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외출해야 하고 AI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거의 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허무와 공허가 판치는 세상.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 자살에 연좌제가 붙는 미래.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시대에는 자신을 대신할 복제인간도 살 수 있다. 그래서 복제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게 합니다. 어디 그 뿐인가. 살기 위해서 자신의 기억도 팔고 타인의 기억도 살 수 있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시대이다.
소설 속 주인공 영수의 꿈은 '영원한 퇴근'이다. 하지만 자살을 하면 가족들에게 무시무시한 벌금이 붙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는 인생. 마지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직장 상사인 오한이 제안을 한다.
복제인간을 파는 브로커를 알고 있다. 복제인간을 사서 그 복제인간에게 네 인생을 살게 해라.
처음에는 거절하던 영수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동한다. 자살이 금지되어 있으니 복제인간은 자신인 척 살아가게 하고 진짜 자신은 몰래 삶을 끝내는 것. 그렇다면 자신의 가족에게 벌금이 부과되거나 괴로운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일을 벌이려고 할 때 사건이 터지는 법.
자신의 복제인간 0수가 직장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 그것도 진짜 영수가 매달고 싶었던 22번 케이블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이가 없는 현실에 영수는 브로커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나요? 복제인간이 불량품 아니냐고 따집니다. 그러자 브로커의 대답도 재미있습니다.
"복제인간이 지 인간 닮은 게 불량인 거냐고?"
그 말에 영수는 할 말을 잃습니다. 복제인간은 단지 생김새만 복제한 게 아닌 마음 속 상태까지 똑같았던 것이었습니다. 복제인간을 폐기할까 묻는 브로커. 하지만 영수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복제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브로커는 복제인간을 설득하라고 말합니다.
"걔를 자살 안 하고 살도록, 설득을 하라고, 그럼 되잖아."
자신이 죽기 위해서 복제인간을 살려야만 하는 영수. 그는 자신이 안전하게 죽기 위해 복제인간 0수를 살리기 위해 0수에게 다가간다.
진짜 인간 영수와 복제 인간 0수가 마주합니다. 자신이 복제인간인 걸 모르는 0수. 그는 진짜 인간 영수가 자신의 복제인간이라고 생각하고 훌쩍훌쩍 울며 하는 말.
"불쌍해. 나 같은 걸 복제까지 해서 또 니가 태어났다니까, 나는 니가 너무 불쌍해."
복제인간이 진짜 인간의 삶도 불쌍히 여기는 현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웃픈 현실입니다.
복제인간이 나를 닮은 것. 그걸 보면 인간은 역시 변할 수 없다라는 말이 어쩌면 맞지 않을까 어르신들이나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것.
인간 쉽게 안 변한다. 인간은 쉽게 안 바뀐다.
그 말처럼 소설의 복제인간마저도 바뀔 수 없다라는 게 진실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그렇다면 정말 인생은 살아봐야 소용없는 걸까? 고쳐쓰지도 못하고 복제인간도 똑같은 거라면 인생은 희망이 없는 것 아닐까? 노래가사처럼 너무 진한 잉크로 써서 지워버릴 수 없는 걸까?
인생을 고쳐쓸 수 없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소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에서 방법을 제시해준다.
덕질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복미영씨. 이제 연예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최애로 삼고 팬클럽을 탄생시킨 복미영씨.
복미영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바꿔 쓰고 있을까? 바로 '버리기' 이다. 일명 자신을 '버리기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복미영씨.
그렇다면 뭘 버린다는 걸까? 제일 먼저 자신을 실망시킨 최애들을 과감히 버린다. 열렬히 최선을 다해 좋아한 만큼 버릴 때에도 미련없이 버린다. 한정판 최애 굿즈도 버리고 마음까지 버린다. 그 뿐 아니다. 과거의 자신을 괴롭게 했던 삶도 버린다.
그 중 가장 잘 버리는 건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의 단어입니다.
친척조카 현주의 집에 입주하면서 아이를 돌봐주는 대가로 용돈을 받던 시절. 현주와 현주 남편 이 소장은 애 봐주는 주제 수전 손택의 책을 읽는다며 말하며 뒤의 수식어를 암시하는 말을 종종한다.
이모님 (주제에). 이모님 (깜냥에).
공공근로를 하는 분홍씨가 복미영씨에게 하는 말.
우리 같은 처지에.
그리고 최애 굿즈를 당근하려고 하자 열혈팬이 비아냥 대며 말한다.
네 까짓 것.
자신이 입버릇처럼 하는 혼잣말.
나는 아마 안 될거야.


한 단어씩을 버리니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문장이 된다.(주제에)를 버리니 이모님이라는 정중한 뜻이 되고 (처지에)를 버리니 우리 같은 동질감을 주지만 부정적인 뜻은 사라진다.(안)을 빼니 될 거야 라는 긍정의 뜻이 되고 (네)를 빼니 '까짓것'이라는 용명하고 경솔하게 시작해 볼 수 있는 뜻이 된다.
한 단어씩을 빼면서 시작된 복미영씨의 인생 수선기는 그렇게 한 단어씩을 버린 후 부터 시작된다.
어쩌면 통상적 복미영과 관념적 복미영의 차이는자신을 구속하는 한 단어를 버리느냐 버리지 못하느냐의 차이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기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복미영씨.
쓰레기를 잘 버리고 재활용을 잘 하는 복미영씨의 특기 마냥 인생 또한 잘 버린다. 그냥 잘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했던 인생의 한 글자도 잘 버린다. 그래서 네 까짓 것이 까짓것인 되고 안 될 거야를 될 거야로 바꾸어냅니다.
그러니 56세 복미영씨가 자신만을 위한 자신의 팬클럽을 생각해낸 것도 바로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 까짓게 팬 클럽을 만들어가 아닌 까짓것 내 팬클럽 만들어보자. 안 될 거야 라는 말 대신 될 거야 라고 생각하며 시도하는 복미영씨.
그러니 자신의 인생이 더 이상 불쌍하지 않다. 인생은 한 글자를 버리면 바뀌는 것이니까.
『영수와 0수』 에서 복제인간마저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불쌍한 영수. 그 영수에게도 복미영씨의 한 글자 버리기를 가르쳐 주고 싶다. 그 한 글자를 버렸을 뿐인데 한 글자를 버리지 못하는 것. 복미영씨의 버리기 기술이 영수의 삶을 바꾸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