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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의 서재
  • 말뚝들
  • 김홍
  • 15,120원 (10%840)
  • 2025-08-30
  • : 19,465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장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11p

불행이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사람이 있다. 김홍 작가의 소설 『말뚝들』의 주인공 '장' 이 그렇다. 
소설은 '장'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장'이라고만 부른다. 독자인 나는 처음엔 그의 이름이 뭐지 그닥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름을 몰라도 이 책을 읽기에 불편하지 않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의 불행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자. 그의 불행을 나열해 보자. 

은행원인 그는 본부장에게 말 한 번 잘 못해서 전국 곳곳의 담보를 확인하는 유배 신세이다. 
그는 몇 년 전 사랑하는 해주와 파혼하고 신혼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함께 유배 신세인 감평사 전아정 씨는 남편에게 자신의 내연남이 '장'이라고 거짓말한다. 

'엎어져도 코가 깨지고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라는 속담이 이런 장의 신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최악의 불행이 닥쳤다. 전아정씨를 태우고 지방 출장을 가야 하는데 알 수 없는 무리에 이끌려 트렁크에 갇혀 납치를 당한 것이다. 24시간 후에 풀려났지만 바지에 똥을 지린 채 겁에 질린 그는 이제 어떤 불행이 와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불행으로도 버거운데  사람 모양을 한 말뚝들이 바다에서 밀려온다는 속보가 뜬다. 
'시랍화' 송장의 체지방이 세균에 의해 가수분해되어 생성된 밀랍과 같은 형태로 된 말뚝들. 
처음엔 바다에 있던 밀랍들이 도시 한 가운데 나타나고 사무실 또는 개개인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입에 오래전  '장'의 명함을 가지고 있던 밀랍1호가 '장'의 집에 나타난다.  



밀랍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하지만 슬픈 걸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분명 한 떄 사람이었을 밀랍들. 그들은 어쩌다가 죽어 하나의 밀랍이 되었나. 
사람이 아니지만 죽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태.  하지만 사람들은 이 밀랍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금기시된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도 주저한다. 그 주저함 속에 그 망설임 속에 또 다른 음모가 꾸며지고 비극알 만들어낸다. 

하지만 '장'의 집에 나타난 밀랍 1호의 인연이 밝혀지면서 '장'은 꺠닫게 된다. 


" 그건 그냥 내가 겪은 어떤 일이니까요." 

우리 사회는 어느 때 불행이 시작되는가. 
그건 바로 그 '말뚝들'의 이야기가 단지 그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할 때 시작된다. 
처음 '장'이 자신의 불행이 오로지 '자신만'의 불행이라고 했을 때 불행은 산더미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느 때 불행이 점점 약해지는가. 
그건 바로 '그 말뚝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다른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때 시작된다. 
나의 불행이 단지 나만의 불행이 아닌 나와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며 함께 울 때 우리는 불행의 강도를 점점 낮출 수 있다. 

왜 밀랍 1호는 장을 찾아갔을까? 
그건 장이 자신의 불행을 다른 세상의 불행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을 처음 감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알기에 밀랍 1호는 장에게 찾아갈 수 있었다. 밀랍이 된 자신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찾아내서 해결해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 '장'은 밀랍 1호의 아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아들에게 처음으로 자기 통성명을 한다. 그의 통성명을 보며 깨닫는다. 
나 역시 그의 이름을 궁금해 하지 않은 건 단지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떄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당연히 그의 이름을 궁금해 했어야 했다. 하지만 단지 작가의 의도가 있겠거니 단정하며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의 무관심이, 더 알려고 하지 않는 생각이 타인의 불행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강릉 지역의 가뭄 소식이 들려온다. 
프랑스의 시위,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쟁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 소식들을 보며 나의 무관심이 그들이 불행을 오로지 그들만의 불행으로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의 불행이 나의 이야기, 나와 우리의 불행으로 받아들일 때 '장'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적이 찾아오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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