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아동 심리와 발달에 대해서 1인자라고 한다면 오은영 박사를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 교육은 누구일까? 바로 이은경 선생님이 아닐까?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이제 교직을 떠나 아이들의 부모로 생활하는 이은경 선생님이 초등 교육이 아닌 에세이로 찾아왔다. 그것도 아이들 교육이 아닌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에서 이은경 저자는 왜 교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이름도 알렸으니 강연과 저술로 제2의 인생에 집중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장애아인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아이를 위해 캐나다 이민까지 했던 저자의 모습을 통해 얼마나 큰 고뇌가 있었을지 짐작이 된다.
우리는 보통 육아에 있어서 환경만 바뀌면 우리의 육아 스타일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경쟁과 비교하지 않기 위해 캐나다로 떠나왔고 그 목표를 이룬 듯 했다. 하지만 다른 한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저자의 생각은 깨어진다. 어쩔 수 없는 한국 엄마라는 생각에 힘들어한다.
교육에 대한 많은 책을 펼친 저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일상들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솔직하게 고백한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특히 첫째는 장애아가 아니지만 사회성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아동발달센터를 3년째 다니고 있다. 그런데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원망이 들 때가 많다.
왜 이리 힘들게 하니...
왜 이리 적응을 못 하니..
다른 애들처럼 해 주면 안 되니..
아이들에게 간섭하고 채근할 때마다 아이에게 주는 감정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은경 작가는 내 감정으로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중대한 감정을 끄집어낸다.
달리 말하자면 엄마는 늘 아이에게 실망하는 사람이고 아이는 엄마에게 실망감을 주는 존재라는 의미다. 연신 '나'라는 존재에게 실망하는 사람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상황,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할까?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 아이의 감정을 생각해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매일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자신에게 실망하는 엄마인 나로 인해 참담하다면 그런 육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에게 한 없이 미안하고 미안했다.
애는 그날이 그날인데 엄마 혼자 널을 뛴다. '인간이 저렇게까지 자기만의 속도를 고집하면서 살 수도 있는 거구나.'
심리치료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선생님께서 아이와 먼저 일대일 대화를 나누신 후 나에게 말씀하신다.
"어머니,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애를 쓰며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가 사회성에 어렵지만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파왔다.
저자 또한 자신의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로 애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고 고백했듯 아이 또한 느리지만 분명 자기만의 속도로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적응해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그 말을 들으며 미안함에 눈물이 나왔다.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요?" 라고 묻는 저자.
맞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정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내 사랑의 방식은 '성실함' 이다.
이제까지 성실함을 삶의 방식에서만 생각했다.
하지만 성실함은 사랑에도 적용된다.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 위해서 내게 '성실함'을 부착하려고 한다.
사랑에도 성실함이 필요한 이 책을 읽으며 오늘도 아이들과의 시간에 '성실함' 한 스푼을 추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