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오래 머물렀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원래 가기로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정을 취소하고 파리에 머물렀다. 나는 왜 그 긴 시간동안 프랑스에 머물렀을까? 나조차도 궁금했던 그 이유에대한 해답을, 여기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부로 연을 맺고 살아가는 서울 여자와 파리남자, 이나라, 티에리 베제쿠르의 파리와 서울 두 도시 이야기, 제 3의 공간의 <풍경의 감각>이다.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특히 파리에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평생 파리에 방문하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 막상 파리에 도착하자 자신의 상상과는 달리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풍경과 인종차별로 충격을 받는 신드롬인 파리 신드롬까지 있으랴.
이렇듯 환상의 나라 프랑스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몇 차례의 인종차별을 겪은 나에게 "개인적이며, 친절하지 않다"고 유명한 국가들은 그리 끌리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프랑스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하는 나라"임에는 틀림없었기에, 70일간의 유럽여행을 계획하며 프랑스를 계획에 집어넣었다.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파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놀란 점은,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대는 날 보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었다. 프랑스에대한 나의 인식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한 명이 그랬다면 "아, 여기도 친절한 사람이 있구나"였겠지만, 차례대로 세 무리의 사람들이 숙소로 이동하는 그 짧은 구간에서 날 도와주니, "내가 오해했구나. 프랑스는 진짜 좋은 곳이구나."라고 생각이 바로 바뀌게 되었다. 이 생각은 숙소가 있는 역에 도착해서 지나가던 어떤 여성분이 "Hey, young lady! Your bag is open."이라고 말해주기 전까지만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경험은 당연히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중 누가 진짜 소매치기이고, 누가 진짜 선량한 파리시민인지 알 수 없으니, 나는 모두가 소매치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파리를 선량한 시민이 많은, 내가 오해했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있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였지만, 정말 문화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있다. 친구와 만나기위해 레퓌블리크역에 내렸을 때였다. 레퓌블리크역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운집해있었는데, 대마 냄새가 지독했다. 대마 합법화 시위를 하고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시위를 목격하게 된 것도 신기했지만, 대마를 피우며 대마 합법화 시위를 한다는 점은 문화충격이었다. 광장 일대를 경찰차가 둘러싸고 있었지만 대마를 피우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이런 일이 마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대마모양의 깃발을 든 사람들이 큰 음악을 틀어놓고 대마를 피우며 시위를 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최인훈은 소설 <광장>에서 광장을 시민이 모여야하는 곳이지만, 아무도 머무르지 않는 곳으로 표현하고있다. 현대의 한국에서는 그 표현이 적용되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아무나 지나다닐 수 있는 비어있는 공간인 광장은 이렇듯 시민들의 의견이 모이는 곳이고, 그러한 풍경은 나로하여금 프랑스라는 나라를 더 프랑스답게 느껴지게 했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분리수거를 잘하는 나라는 없다. 저자에 의하면 서울시에서는 수거한 쓰레기의 66퍼센트가 재활용되는 반면, 파리에서는 15퍼센트만 재활용된다고하니 알만하다. 유럽여행 중 나는 한식이 너무나도 먹고싶었다. 한국에서도 한식보다 양식을 좋아하는 내가, 막상 70일동안이나 한국을 떠나있다보니 한식을 찾게 되었다. 가질 수 없으면 더 갖고싶은 법이다. 결국 나는 나의 참지 못하고 파리의 아파트먼트 호텔을 일 주일간 빌리고, 한인마트를 찾아서 닭볶음탕을 해먹었다. (오른 쪽이 그 사진이다.) 그러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음식물쓰레기와 일반쓰레기를 분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같으면 큰일나는 일인데, 호텔측에서 제공해준 봉투에 쓰레기를 구분없이 집어넣기만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풍경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여행중이던 어느 하루, 나는 파리 길거리의 건물 외벽에서 꽃다발을 보았다. 누가 꽂아놓은지 알 수 없고, 프랑스어도 몰라 누구를 위한 꽃인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기리기위해 "누군가"가 꽂아놓은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참 프랑스다웠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저자가 파리 퐁피두센터 근처 전신주에서 어느 객사한 노숙자를 기리기위한 꽃을 발견했다고한다. 그에게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그의 지인이나 그에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길에서 죽는 이들을 위한 모임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내가 파리를 방문한 것이 테러 이후였기때문에 내가 추측하기로는 이것이 테러와 관련있지 않을까 했는데, 번역기를 통해 번역해보니,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JEAN BAPTISTE FERRACCI를 기리기 위한 것이란다. 서울의 길거리와는 다른, 파리만의 풍경이었다.
에펠탑과 베르사유궁전으로 대표되는 랜드마크의 나라,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예술의 나라, 달팽이 요리와 바게트, 미슐랭으로 대표되는 미식의 나라 ... 프랑스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고, 프랑스에대한 인식은 대체로 보편성을 띤다. 이런 보편적 특성뿐만 아니라 파리와 서울의 특수성, 내가 잘 알지못하던 일면에 대해 알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파리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을 읽고 내가 알던 파리의 모습, 몰랐던 파리의 모습에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고,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라도 파리와 서울의 일상을 체험할 수있다.
프랑스인들은 예상했던대로 대체로 차가웠으며, 프랑스에서 분명 불쾌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과 달리 여행내내 색다른 모습의 파리라는 판타지에 취해있었고, 일상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고있었다. 나를 그 오랜시간동안 파리에 머물게 한 것은 분명 서울과는 뭔가 다른 풍경의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