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에서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하는 말로 "be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라고 해석되는데, 이 표현,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수저론"과 참 비슷하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 기사 / URL : http://news.joins.com/article/18949618
영어 표현에서는 "다른" 수저없이 은수저 표현 딱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금, 은, 동 거기에 흙수저까지 다양하다. 또 수저별로 구체적 기준까지 있기도하다. 그러나 영어표현과 우리나라 수저론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자신의 노력여부와는 상관없는 부모로부터의 유산이며, 현대사회의 새로운 "계급"을 구성하고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계급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더욱더 뚜렷하게 구별되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이미 세대구분이자 계급으로 자리잡은 [바링허우]에 대해 알아볼까한다.
책, <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이다.


사진 위 : 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 책 / 사진 아래 : 각각 70, 80, 90년대생을 나타낸다.
바링허우(80后)란?중국은 세대구분을 하기 위하여 10년대 단위로 끊긴 연도 뒤에 한자 后를 붙이는데, 바링허우는 80년대생을 뜻한다. 한국에는
중국의 88만원 세대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바링허우가 단지 세대구분일 뿐만 아니라, 특권계층이 아닌 경제기반을 가진 하나의 계급을 뜻한다고 소개한다.

중국 계층간 갈등구조를 보여주는 풍자만화. 고급세단을 타고 달리는 재벌가 자제와 노동자 부모를 두고 힘겹게 걸어가는 바링허우의 빈부격차를 드러낸다.
바링허우들은 노동이 상품으로 전락한 시대를 살고있는데, 개인의 노력여부는 성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미 자본은 불리한 방식으로 분배되어있고,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출발선은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바링허우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성공하지 못한 인생으로 치부하며 신음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성공은 자아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물질"적으로 얼마나 풍요한가를 말한다.
그들의 실패는 삶에대한 회의과 역사의식 결여의 문제를 수반한다. 이는 역사적 사건들이 바링허우 개개인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중요한 것은 물질이지 역사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논지에 더불어 작가가 바링허우의 일면으로 소개하는 인물 두 명이 있는데, 바로 중국의 궈징밍과 한한이다. 두 명 모두 바링허우 세대이며 (각각 1983년생, 1982년생) 두 명 모두 베스트셀러작가일 뿐만 아니라, 궈징밍은 1200억대의 자산가이고, 한한은 4억 5천만명이 방문하는 중국 최고의 파워블로거이자 타임지 표지에 얼굴이 실린 유명인이다.

위 : 궈징밍 (郭敬明) / 오른쪽 : 한한 (韓寒)
작가는 궈징밍의 작품 <소시대>와 한한의 작품 <1988>을 예로 든다. 궈징밍의 <소시대>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모자라 영화로 개봉하여 승승장구하게되는데, 이 때 작가는 자신의 친구 아내의 부고를 듣게되된다. 친구의 아내는 공장에서 일하는 바링허우였으며, 영화관 한 번 방문하지 못하고 두 아들과 남편을 뒤로한채 사망하게 된다. 반면 궈징징의 <소시대>에서는 젊은이들이 고통없이 화려한 삶을 즐긴다. 또 한한의 작품 <1988>의 경우에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이 드러나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진솔하지 못한 저항이라고 비판한다. 한한이 저항이라는 가면 아래에 역사적 허무주의를 숨기고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두 작품 모두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아와 역사 탐구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자아의식과 정신적 가치가 도태되고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내용의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위 : 중국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인 상하이 / 아래 : 중국의 농민공
중국에서 자아의식과 역사주의, 정신적 가치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깨달은 것은, 중국의 인신매매나 살인 강도 등의 사건들이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뜬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은 무수히도 많으며, 살인이나 강도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작가가 이런 일들의 가해자는 대부분 농촌에서 선량하게 살다가 도시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고통받는 개인은 집단이 되면 주체의식이 사라지고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게 되고, 자아의식과 정신적 가치는 사라져버린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간혹 소개되고 있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링허우 세대가 얼마나 소비에 집착하는지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 공장에서 번 적은 돈을 월말쯤에는 모두 써버려서, 저축따위는 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결국 국가에서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한다.
이러한 계층을 "농민공"이라고 하는데, 이의 사전적 정의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여 건축·운수 등에 종사하는 농민출신 노동자" 다. 이들은 농민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두 가지 계급의 결합이며, 허공에 뜬 계급이다. 1970년대까지만해도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바링허우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이 상품화되어버리고 인간이 물화된 사회에 딱 맞는 현상이다.


위 : 중국 북경대 심벌 / 아래 : 중국 위안화
1999년이후 중국의 대학 및 대학원 정원 확충사업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늘어났고, 그에 따라 바링허우들은 이를 성공의 발판으로 여겼다. 그러나 선재자본의 유무만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었고, 그들의 믿음은 처참히 무너졌다. 이는 대졸실업자 50만인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슷한데, 대학을 졸업한다고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바링허우는 어느정도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샤오즈(小资)가 되기를 갈망하고, 샤오즈는 자본을 갖춘 중산계급(中产阶级)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있는 중국사회에서 대도시에 거주하며 모든 "물화"된 것들에 파묻혀있는 바링허우들. "물화"된 것들은 그들 주변의 사물들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중국은 사회주의체제를 기반으로한 국가이기때문에, 거대자본이 투자될 수 있도록 지정된 도시들과 그렇지 못한 농촌간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물화"된 자신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바링허우들은 계급간의 격차뿐만 아니라 이러한 도시로의 이주에 따른 추가적인 문제까지 짊어지고있다.
작가는 바링허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잡지에 게재하고 난 후, 대학에서 부교수까지하는 복받은 사람이 바링허우를 대표한다고 주장하였다며 비판을 면치 못했다. 또 도시의 문제점에 대해 서술할 바에 도시를 떠나라고 비판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이러한 논쟁과 토론의 과정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싶었다고한다.
대한민국과는 다른 체제하에 있는 중국이지만 그들의 삶은 확대된 버전의 우리 삶과 같다. 그들의 삶은 우리를 비추고있으며, 그 발전속도또한 빠르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하고 헤쳐나가야할 문제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있다. 이 글을 읽고계시는 분들도 이 책을 통해 중국의 88만원세대를 분석함으로써 대한민국과 비교하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소망한다.
2017년 8월 15일, <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