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은 곧,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현재 한국의 주류 역사가들에 의해 왜곡되고 날조된 한국의 역사를 물리치고 박은식의 계통을 이어 한국의 근대사학을 발전, 확립한 단재 신채호와 같은 민족사학자들의 고증에 기초하여 확립한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의 역사를 재확립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황국제국주의에 기초한 일본의 한국 강점에 대한 합리화와 한국 민족의 영혼을 갉아내기 위해 그 근간을 도려내려 했던 일본은 단군조선을 가상의 역사로 단정짓고 한사군과 임나일본부를 통해 대한민국의 고대사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고 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에게 먹혀들어가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날조된 역사관은 오히려 해방 후 대한민국의 탈을 쓴 일제 식민사관 학자들에 의해 먹혀들어갔다. 자국의 사람이 자국을 팔아먹을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역사 날조 친일행적에 앞장을 선 사람들은 이미 이 곳에 없거나 이 곳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려 이 곳의 정상에 서서 자신들의 생을 걸고 그 식민사관을 지키며 일제의 시각을 전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정권으로부터 시작된 친일세력에 대한 우대 속에 기생하면서 군사정권에 의해 청산이 아닌 부활을 하며 지금에 걸쳐서까지 대한민국 역사계의 주류를 이루며 제 2, 제 3의 식민사관 학자들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행적으로 대표적인 이완용의 한 손자가 21세기에 국립 서울대학교 총장을 하고, 그의 동생은 문화재청장을 지냈다는 작가의 말에 다소 씁쓸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이완용과 연계 시켜서 그의 후손들의 숨통에 족쇠를 채운다는 것은 무리라 생각을 하면서도, 이완용의 손자인 이윤형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어마어마한 재산 반환 소송에서 승소한 바가 있다는 말은첨예한 송곳에 뇌를 찔리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위치에 있는 한국 역사학계의 지배권력, 법조계 종사자들의 정신적 뿌리가 의심스럽다. 이런 세상을 우리는 살아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역사의 비극'이라고 작가는 설파하고 있다.
고대부터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며, 대한민국으로부터 단군조선을 떼어내 삭제시키고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사의 고대왕국 형성기를 300년 무렵에 맞춰가며 한국의 시작은 식민지부터라고 억지 주장하고 있는 식민사학을 엄호하고 해방 이후에도 조선총독부 한국 지부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대해 개탄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단군조선을 허구적 신화로 개편시키고 고조선이라는 강대하고 광활한 독립국가를 원시적인 부락 형태로 전락시켜 재구성하며, 결국 한국사는 신라 때부터 시작이다라는 얼토당토 않은 설로 민족의 자존감과 뿌리를 뒤흔들어버리는 악날한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의 바통을 이어받아 계승시키는 한국의 주류 식민사학자들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식민사관의 태두라는 이병도가 만년의 회개를 통해 고조선의 존재를 언론에 확고히 했음에도 오히려 현재의 역사권력을 쥐고 있는 가짜 민족주의자들, 그의 제자들(현재 한국의 사학을 거머쥐고 그 영향력이 절정에 있는 자들)로부터 그 사실이 외면 당하여 결국 그의 참회가 없었던 것이 되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조선 교육은 이치를 캐는 자를 되도록 줄여야 한다."는 조선총독부의 교육방침에 의해 천황에 대한 노예 의식을 깊이 새기는 교육, 즉 자연과 인간, 사물에 대한 주체적 회의나 사유를 제거하고 앞뒤가 없는 조각조각의 사건을 단순 암기하게 하는 주입식 교육이 나오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주입식 교육이 무엇이냐, 감성과 이성을 마비시키며 창의를 원초적으로 봉쇄시켜 죽은 자로 성장하게 만드는 쓰레기이다. 질문할 충동이 사라질 때 그 사회는 비로소 정체가 되는 것이다. 그 쓰레기로인해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젊음이 시들고 정신이 부패되었나 생각해 보면 가슴에서 분노의 고혈이 철철 흘러 내리는 느낌이 든다.
일제가 패망한 지 68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일제가 만든 교육 시스템이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다. 일제로부터 광복한 그날, 거꾸로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청산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국민적 염원을 담아 출범한 반민특위는 이승만과 그의 주변 친일세력들의 줄기찬 방해책동과 소장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백범 김구의 피살이 겹치면서 업무개시 8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황국주의 식민사관의 앞잡이 노릇을 해왔던 역사학자가 부활을 했고, 그의 영향력은 민족사학의 가면을 쓰고 현재의 주류 역사학자들을 잉태한 것이다. 이로써 친일파 청산은 후세들에게 역사적 과제로 남겨졌고, 이후 한국사회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만 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일부분은 사회제도, 다른 일부분은 개인적인 심리에 그 원인이 있는데, 개인적인 심리도 사회제도의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제도가 올바로 서지 못하게 되면 그 안에 귀속된 개인개인에게는 불행이 찾아온다라는 말일 것이다. 이 책,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 역사를 바꾸는 일은 항상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이 땅을 지켜온 민중의 몫이었다. 그들은 점점 커지는 북소리가 되어 오랫동안 기대어 살던 거짓 '진리들'을 일소하는 압도적인 폭풍으로 몰아칠 것이다. 그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인 독립혁명가 김산의 말을 전하면서 이 책의 끝을 마무리 했다.
교육과 역사, 언론, 법계 그리고 더 나아가 정치와 예술 및 사회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형성되어 있는 친일 기득권 세력의 청산과 그 세습을 타파하고 그 위에 진실의 씨앗을 던지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지에 찬 말처럼 잘못된 역사를 교정하기 위해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이 땅을 지켜가는 민중에게 나도 함께 희망을 걸어본다.